빈센트 반 고흐의 미술관







2062년 6월 30일, 서울 예술의 전당 특별 전시실에서 빈센트 반 고흐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빈센트의 미술관’전이 열렸어요. 이번 특별 전시회는 앞으로 3년 동안 세계 여러 나라의 주요 도시에서 막을 올릴 순회 전시회의 시작을 알려 주었지요.


현웅, 빈센트를 만나다

전시회에는 반 고흐의 대표작뿐만 아니라 밀레, 들라크루아 같은 반 고흐가 숭배하던 선배 화가들의 작품도 함께 진열되었어요. 전시회를 기획한 네덜란드 반 고흐 재단은, 이번 전시회는 반 고흐의 예술과 생애를 두루 살펴볼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라고 발표했어요.

한편 전 세계 신문과 방송에서 연일 헤드라인으로 다룰 만큼 대중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화젯거리가 또 하나 있었어요. 그것은 최첨단 레이저 기술과 인공 지능 기술을 접목한 최신 발명품으로, 반 고흐의 생전 모습을 쏙 빼닮은 홀로그램 로봇이었어요. 레이저가 만들어 내는 3차원 영상에 인공 지능 센서를 갖춘 반 고흐 로봇은 전시실을 두루 돌아다니며 관람객들에게 그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도록 설계되었지요.

더구나 로봇은 단순히 저장 장치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을 앵무새처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질문을 이해하고 판단하여 대답할 수 있는 ‘대화’ 능력을 갖추었어요. 그리하여 로봇 이야기를 미리 전해 듣지 못하고 예술의 전당을 찾은 이들은 반 고흐가 부활하지 않았는지 눈을 의심할 정도였지요. 하기는 냉동 기술의 발달로 죽은 지 수십 년 되는 이들이 다시 햇빛을 보는 일이 상식처럼 되어 있는 세상이었으니 법석을 피울 일만은 아니었답니다.

오전 10시, 실내악 선율처럼 아름다운 종소리가 울려 퍼졌어요. 이윽고 미술가, 음악가, 무용가, 소설가, 시인 등 전 세계 예술계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테이프 커팅을 하면서 전시실 문이 활짝 열렸어요. 이른 아침부터 길게 장사진을 이루고 섰던 관람객들이 하나둘씩 전시실로 빨려 들어갔어요.

그런데 개막식보다 두 시간 앞서 ‘빈센트의 미술관’을 구경하는 남다른 기쁨을 누린 이들이 있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특별히 초청된 초등학교 어린이들이었습니다. 반 고흐 재단이 2059년에 주최한 반 고흐 위인전 독후감 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은 까닭인데, 대한민국에서 초청을 받은 어린이는 현웅이었습니다.

아이들이 큐레이터의 안내를 받아 적갈색 대리석이 깔린 전시실에 들어섰습니다. 천장과 바닥에서 조명이 켜지면서, 뿌연 어둠 속으로부터 반 고흐의 걸작들이 환하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손짓, 발짓을 섞어 가며 종잘거리던 아이들이 콜라 병 뚜껑을 열 때 나는 소리 같은 싱그러운 탄성을 자아냈어요. 그들의 상기된 표정을 잠시 즐기던 큐레이터가 천장 중앙을 향해 리모컨을 조작하자, 빨강・초록・노랑 레이저 광선이 삼면 벽에서 뿜어져 나오는데 설마설마하던 아이들은 화들짝 놀라 제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답니다.

빨강 머리 반 고흐가 부드럽고 차분한 미소를 지으며 초롱초롱한 눈으로 화가 지망생들을 둘러보았어요. 건장한 몸매에 왼쪽으로 약간 기운 너른 어깨를 가진 반 고흐는 농부의 작업복을 입고 밀짚모자를 썼어요.

놀라는 것도 잠시 아이들이 조르르 달려가 홀로그램 로봇을 둘러싸고 물 끓듯 수군거렸어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로봇을 만져 보려는 아이도 있었지만, 로봇은 연기처럼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갈 뿐이었어요.

“여러분, 안녕하세요! ‘빈센트 반 고흐의 미술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지금부터 관람을 시작하겠습니다.”

로봇이 손짓하며 아이들을 그림으로 안내했어요. 로봇의 뒷모습을 보며, 현웅은 아를의 아이들이 반 고흐를 미친 사람이라고 놀려 대며 돌과 쓰레기를 집어던졌다는 이야기를 떠올렸어요. ‘저처럼 상냥하고 친절한 분인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요. 로봇의 손이 자기 손처럼 진짜라면 꼭 잡아 주고 싶을 정도였어요.


빈센트의 꿈

첫 번째 방을 돌아 나와 두 번째 방으로 향했어요. 어느새 다른 아이들은 로봇과 반 고흐의 그림들이 시큰둥해졌어요. 바닥에 풀썩 주저앉거나 화장실을 찾아다니는 등 딴전을 피우느라 고요한 전시실에 작 소란이 일었어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엄마 오리를 쫓아다니는 새끼 오리처럼 로봇을 따라다니던 현웅이 고개를 들어 로봇의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어요.

“왜 화가가 되었어요?”

로봇이, 아니 반 고흐가 대답했어요.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싶었어.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어 보았니? 천사의 노래 같은 아름다운 선율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마음이 평화로워지지 않던? 짜증나고 화나고 슬픈 일을 잊을 수 있지 않던?”

레이저 광선이 먼지와 충돌했는지 반 고흐의 얼굴 한쪽이 파르르 일렁거렸어요.

현웅이 맞은편 그림을 뚫어져라 응시했어요.

“그런 음악가들처럼 되고 싶었어. 다만 음악가들은 음표로 선율을 만들어 내지만, 저는 색채로 선율을 지어 낼 뿐이지. 색채를 조화롭게 배열하면 멋진 시를 쓸 수 있어. 붓을 바이올린 활처럼 움직이며 색채로 음악을 연주하는 것, 그것이 내 꿈이었어.”

현웅이 고개를 끄덕였어요.

“에인트호벤에서 피아노 레슨을 받은 적이 있다던데 그 때문에 그랬어요?”

반 고흐가 눈을 동그랗게 떴어요.

“그건 어떻게 알았니? 위인전에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던? 그래, 맞아. 색채를 이용한 음악, 색채의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려 했던 만큼 무엇보다 색채에 대해 많이 연구해야 했어. 그래서 한편으로 색채 이론을 깊이 공부하면서 색채와 음표는 어떻게 연결될까 많이 고민했지. 예를 들어 다양한 색상과 명암을 음표로 어떻게 나타낼까 하고 말이야. 그래서 반 데르 산데라는 선생님한테 피아노를 배웠는데 오래가지는 못했어. 내가 레슨 내내 피아노 음표와 파랑, 초록, 노랑, 빨강, 하양을 비교했거든. 산데 선생님은 그런 내가 무서웠나 봐. 미친 줄 알았겠지, 뭐. 결국 레슨을 그만두었어.”

“하하하!”

현웅이 크게 웃자, 반 고흐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손을 들어 그림을 가리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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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람을 흔드는 여인, 1889년, 93cm × 74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
출처: Wikimedia Commons


“자, 이 그림을 보렴. ⟨요람을 흔드는 여인⟩으로 알려져 있지. 하지만 나는 ‘자장가’나 ‘요람을 흔드는 여인’ 쪽이 더 좋아. 초록색 옷을 입은 여인이 아기 요람에 이어진 끈을 쥐고 의자에 앉아 있어. 고동색 팔걸이에 편안하게 팔을 올려놓은 채로. 여인의 윗도리는 짙은 황록색이고 치마는 연한 황록색이지. 머리카락은 주황색이고 얼굴색은 귤빛 같은 적황색인데, 입체감을 주기 위해 붓질을 잘게 끊었어. 손은 얼굴과 같은 색이고, 타일을 깔았을 수도 있고 아님 그냥 돌바닥일 수도 있는 방바닥은 주홍색이야. 벽에는 청록색 벽지를 발랐어. 그림 속 다른 색들과 멋진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머릿속으로 얼마나 열심히 계산을 했는지 모를 거야. 어쨌든 벽지에는 분홍색 달리아와 주황색, 군청색 문양을 연달아 수놓았지. 나는 이 그림에서 색채로 음악을 연주하겠다는 꿈을 펼쳐 보이려 노력했지. 어때요, 그림에서 자장가를 들을 수 있니? 내가 색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데 성공한 것 같아?”

현웅이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어요. 반 고흐가 현웅의 어깨 위에 살며시 손을 얹었지만 현웅이 그 손길을 알아챌 리 없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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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종, 장 프랑수아 밀레, 1857년~1859년, 55.5cm×66cm, 오르세 미술관 |


“그리고 나는 밀레의 마음을 가지고 싶었어. 저 그림, 무슨 그림인지 알지?”

“그럼요! 밀레의 ⟨만종⟩이잖아요. 그런데 만종이 뭐예요?”

“엉? 아, 말이 좀 어려운가 보구나. 저녁에 울리는 종이라는 뜻이야. 성당에서는 하루 세 번 종을 울리는데, 신자들은 그때마다 종소리에 맞추어 기도를 드리곤 해. 밀레는 밭에서 일하던 농부들이 저녁 종에 맞추어 기도드리는 모습을 표현해 놓았던 거야. 그림에서 어떤 느낌이 나니?”

현웅이 오른손으로 턱을 괸 채 자신의 느낌을 표현할 말을 찾느라 끙끙댔어요.

“어……, 고요함, 따뜻함, 포근함, 성스러움, 신비로움, 그리고…….”

“그렇구나. 그림 속 등장인물은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힘든 농부란다. 물론 오늘날의 농부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그때는 지금과 무척 달랐지. 왜, 밀레의 ⟨이삭줍기⟩라는 그림도 있지 않니? 얼마나 먹고살기 힘들었으면, 다른 이들의 추수를 도와주고, 맨바닥에 떨어진 이삭이라도 주워 끼니를 때우려 했겠어? 그처럼 가난하고 고달픈 농부들의 모습을 표현했지만, 이 그림이나 ⟨이삭줍기⟩는 괴로움이나 서러움이 아니라 신성함과 숭고함을 전해 주지. 그래, 밀레는 그런 화가였어. 나도 그분처럼 늘 만날 수 있는 친근하고 평범한 일상과 사람들 속에서 신성함을, 또한 영원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해 그림 속에 담기를 소망했지.”


색채의 마술사

반 고흐는 감동 어린 표정으로 뚫어져라 밀레를 쳐다보았어요.

“하지만 색깔이 칙칙해요.”

현웅이 한쪽 발로 대리석 바닥을 긁었어요. 반 고흐가 뜨끔해하는 눈치였어요.

“그렇지? 나도 화가 생활을 시작하고서 처음 몇 해 동안은 어두운 색을 주로 썼단다. 아까 첫 번째 전시실에 걸린 그림들 보았지? 하지만 색채의 음악가요 시인이 되겠다고 결심한 이상 나만의 색깔을 발견하는 일이 중요했어. 나는 컬러리스트, 그러니까 색채 화가가 되기를 목표로 삼았어. 그래서 새로운 색채 실험에 착수했어. 그게……, 벨기에의 안트베르펜을 떠나 동생 테오와 파리에서 함께 살기로 했던 무렵이지. 이키, 테오 얘기가 나오니까 괜히 얼굴이 뜨거워지는구나.”

반 고흐가 고개를 푹 숙였어요.

“왜요? 두 분은 서로 마음속 깊이 사랑했고, 그런 만큼 평생 아름다운 편지를 주고받았잖아요?”

현웅이 의아한 듯 되물었어요.

“그거야 그렇지만……. 사실 나는 동생한테 평생을 얹혀살았단다. 무거운 짐이었고말고. 죽을 때까지 돈 한 푼 벌지 못했거든. 테오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건 그렇고, 당시 파리에는 인상주의 화가들이 활약하고 있었어. 그들은 미술 세계에 혁명을 불러왔고, 이전 그림과 달리 어두운 색을 쓰지 않고 원색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면서 색채를 해방했지. 하지만 그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데 마음을 빼앗겼어. 그러다 보니 음악가와 시인에게 필요한 감정과 상상력이 부족했어. 과학자의 시각으로 세상을 본 거야. 그래서 나는 인상주의자들과 다른 방향으로 색채 실험을 하기로 했어.”

반 고흐가 옛 기억을 더듬어 갔어요.

“그 무렵 친구들이 꽃다발을 한아름씩 들고 오곤 했어. 붉은 양귀비, 푸른 구리꽃, 물망초, 하얀 장미, 붉은 장미, 노란 국화……. 나는 꽃을 화폭에 담았어. 그러면서 파란색과 주황색, 빨간색과 초록색, 노란색과 보라색의 보색 관계가 어떤 조화를 이루어 내는지 자꾸만 실험했지. 참, 보색이 무언지 알아? 색에는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이란 삼원색이 있어. 그리고 빨간색과 노란색을 섞으면 주황색, 노란색과 파란색을 섞으면 초록색, 파란색과 빨간색을 섞으면 보라색을 얻을 수 있어. 그런데 주황색과 나머지 원색인 파란색을, 초록색과 나머지 원색인 빨간색을, 보라색과 나머지 원색인 노란색을 가까이 놓으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이때 두 색을 보색이라 하고, 보색이 이루는 대조를 보색 대비라고 하지요. 물론 이 색들만 보색인 것은 아니야. 어떤 두 색을 서로 섞었을 때 검정이나 회색처럼 무채색이 되는 모든 색이 보색이지. 색상을 보여 주는 색상환에서 보면, 반대쪽에서 마주 보고 있는 색들을 말하고. 그런데 보색 대비가 일어나 색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 두 색은 서로 채도를 높여 주어 더욱 선명하고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물론 리듬감을 갖게 된단다. 왜냐고? 혹시 뜨거운 사우나에 들어갔다가 차가운 냉탕에 뛰어 들어가 본 적 있니? 온도 차이가 찬물을 더욱 차게 만들지. 마찬가지로 사탕을 먹다가 오렌지 주스를 마시면? 맛의 차이가 오렌지 주스를 더욱 시게 만들고. 이런 이치와 같아.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물마다 고유한 색을 지닌다는 믿음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었지. 실제로 모든 색은 가까이 있는 색에 영향을 받아 변화를 나타내니까. ⟨요람을 흔드는 여인⟩을 기억해 보렴. 벌써 짐작했겠지만, 그 그림에는 초록색과 주황색, 노란색과 파란색 같은 보색들이 대조를 이루고 있지. 그것으로 나는 자장가를 작곡하려 했던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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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젠 들라크루아, 폭풍 속에 잠든 예수, 1853년 무렵, 50.8cm × 61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
출처: Wikimedia Commons


“여기 운명처럼 다가선 그림이 있어. ⟨폭풍 속에 잠든 예수⟩, 들라크루아의 작품이지. 그분은 나의 색채 실험에 가장 큰 영감을 주었어.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해 물리학에 바탕을 놓았고, 스티븐슨이 증기 기관을 발명해 산업 혁명을 앞당겼다면, 들라크루아는 보색 대비를 그림에 적용한다는 색채의 법칙을 발견해 미술의 역사를 새로 썼다고 할 수 있어. 그리고 대담한 색채와 뜨거운 정열에 가득한 표현을 통해 감정을 나누려 했지. 이 그림만 해도 빨간색과 초록색, 노란색과 파란색의 보색 대비가 격렬한 풍랑과 흔들리는 보트와 태평하게 잠들어 있는 그리스도를 선명하게 대조해 보여 주지. 나는 이 실험을 끝까지 밀어붙이기로 했어. 보색 대비와 색채의 결합과 혼합, 그리고 대조를 통해 감정을 화폭에 담아내고 싶었던 거야. 색채로 연인의 사랑과 마음의 신비를 표현하고, 얼굴을 어두운 배경에 대비되는 밝은 광채로 빛나게 해서 사상을 표현하고, 별을 그려 희망을 표현하고, 석양으로 열정을 표현하려 했어.”

“아저씨의 그림 세계에 한 발짝 더 다가선 것 같아요.”

현웅이 발걸음을 떼며 말했어요. 반 고흐가 손바닥을 마주 비비는데 그 가슴 속에서 전기 스파크 소리가 들려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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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의 카페, 1888년, 72.4cm × 92.1cm, 예일 대학교 미술관 |
출처: Wikimedia Commons


“이번에는 이 같은 이론을 실험한 그림을 보여 줄게. 저기 당구대가 있는 그림 보이지? ⟨밤의 카페⟩야. 중앙에 초록색 당구대가 놓여 있는 카페 안은 핏빛과 짙은 노란색이 가득한데, 담황색 등불 네 개가 주황색과 초록색으로 빛나고 있어. 쓸쓸한 카페 안에서 빨간색과 초록색이 맹렬히 대조를 이루며 충돌하지. 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파괴할 수도 있고, 미칠 수도 있으며,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는 끔찍한 열정을 이 같은 보색 대비를 통해 표현하려 했어. 사람들은 내가 정신이 이상한 상태에서 그림을 그렸다고 수군댈지도 몰라. 다음은 ⟨아를 포룸 광장에서 본 카페테라스⟩야. 별이 총총히 반짝이는 푸른 밤하늘 아래에서 테라스의 커다란 가스등이 불을 밝히고 있어. 노란색과 파란색의 강렬한 대조를 느낄 수 있지 않니? 이로써 그림은 생동감을 갖게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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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를 포룸 광장에서 본 카페테라스, 1888년, 81cm × 65.5cm, 크뢸러 뮐러 미술관 |
출처: Wikimedia Commons


“아, 그렇구나!”

현웅의 반응에 반 고흐가 신이 나서 설명을 이어 갔어요.

“나는 보색 대비와 색채의 배열을 이용하여 감정을 표현하는 데만 그치지 않았어. 모파상이라는 소설가를 알고 있니? 그분이 ⟨피에르와 장⟩이라는 소설을 썼는데, 서문에 이런 구절이 나와. ‘우리가 사는 세계보다 더욱 아름답고 단순하며 한결 큰 위안을 주는 세계를 소설 속에 창조하기 위해 예술가는 과장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다.’ 그리고 피사로라는 인상주의 화가도 색채의 조화와 부조화의 효과를 대담하게 과장하려고 애썼어. 나도 색채를 과장해 쓰기로 마음먹었어. 다시 말해 눈앞에 보이는 자연을 정확하게 복사하기보다는 나 자신을 강렬하게 표현하기 위해 색채를 마음대로 과장하겠다는 생각이었던 거야. 저기 걸린 ⟨보슈의 초상화⟩를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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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슈의 초상화, 1888년, 60cm × 45cm, 오르세 미술관 |
출처: Wikimedia Commons


현웅이 반 고흐의 뒤를 따랐어요.

“보슈는 아를에서 알고 지내던 벨기에 화가야. 이 초상화에서 위대한 꿈을 꾸며, 나이팅게일이 노래하듯 일하는 화가의 진정한 모습을 그리는 한편 그를 향한 감사와 사랑을 담고 싶었어. 무엇보다 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가능한 한 충실하게 그려야 했지만, 욕심대로 작품을 완성하려면 자유롭게 색채를 구사하면서 과장해야 했지. 그래서 머리의 금빛을 과장하고, 주황색, 황토색, 연한 담황색도 칠했어. 머리 뒤로는 보잘것없는 방의 평범한 벽을 그리는 대신 가장 풍부하고 가장 강렬한 파란색으로 끝닿은 데 없는 무한을 그려 넣었고. 결국 진한 파란색 배경과 밝은 머리가 단순한 조화를 이루며, 푸른 하늘의 별 같은 신비로운 효과를 얻을 수 있었던 거야. 초상화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화가는 초상화를 그리면서 생각하기를 배울 수 있어. 그리고 모델의 진정한 모습을 간직한 초상화에는 영혼이 깃들게 마련이지.”

현웅이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손을 꼼지락거렸어요. 조금은 알 듯 모를 듯한 이야기이지만,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반 고흐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실험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어. 색채뿐 아니라 사물의 형태도 과장하기 시작했지. 정확한 색채와 정확한 형태가 그림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저쪽에 나란히 걸린 ⟨배경에 알피유 산맥이 있는 올리브 나무들⟩과 ⟨별이 빛나는 밤⟩을 보면 내가 어떤 실험을 했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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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에 알피유 산맥이 있는 올리브 나무들, 1889년, 73cm × 92cm, 뉴욕 현대 미술관 |
출처: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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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이 빛나는 밤, 1889년, 73.7cm×92.1cm, 뉴욕 현대 미술관 |
출처: Wikimedia Commons


화가와 자연이 만나는 그림

반 고흐의 몸이 처음보다 무척 뜨겁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결국 나는 색채와 형태의 과장을 통해 감정을 드러내는 표현주의 미술을 개척한 셈이야. 훗날 사람들은 이로써 내가 현대 미술을 개척했다고 하더구나. 분명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사실주의 그림은 진실을 놓치기가 쉬울 것 같아. 거울 속에 비친 영상처럼 실제 사물과 색채나 형태가 완전히 같은 그림이 사진과 무엇이 다르겠어? 거기에는 화가의 감정이 끼어들 자리가 없지 않을까? 있잖아, 이따금 사람들은 내가 너무 빨리 작업한다고 투덜대곤 했어. 하지만 쇠는 달구어졌을 때 내리치라는 속담도 있지 않니? 감정이 불길처럼 들고 일어나는데 어쩌란 말이야! 그처럼 영감이 솟구쳐 오를 때면 붓을 쉬지 않고 놀려야 했던 거야. 그래서 나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면서, 정열에 가득 차 연설을 하거나 영감에 이끌려 글을 쓰는 것처럼 붓질을 해 댔지. 우리네 화가를 이끄는 것은 오직 감정과 자연을 향한 느낌의 진실함 아니겠니?” 지망생들을 지켜보던 큐레이터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어요. 개막 시간이 가까워졌어요. 현웅이 큐레이터를 슬쩍 보며 물었어요.

“아저씨의 그림이 색채와 형태를 과장하고 사실보다 느낌을 강조했다면, 현대 미술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군요? 하지만 현대 미술에는 자연은 없고 화가 자신의 느낌만 가득한데, 아저씨의 그림은 전혀 다르잖아요!”

반 고흐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어요.

“나는 현대 미술과 달리 결코 자연을 내팽개치지 않았어. 언제나 현장에서, 자연 앞에서 그리려 노력했지 머릿속으로만 작업하지 않았어. 때로는 색채와 형태를 과장하곤 했으니, 한 번도 자연에서 등을 돌린 적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말아냐. 더구나 형태에 관한 한 자연의 진실에서 멀어지는 것이 무척 두려웠어. 바꿔 말하면 자연을 과장하면서 자신의 감정만 드러내는 작품이 되면 어쩌나 고민했던 거야. 그리고 아무리 내가 색채와 형태를 과장했다 해도 그림 전체를 멋대로 고안해 내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어. 아무리 중요한 작품이라도 형태를 모델 앞에서 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파괴해 버린 경우도 있을 정도니까.”

큐레이터가 리모컨을 빼 들었어요. 반 고흐가 눈 녹듯 사르르 꺼져 버리며, 현웅에게 인사를 건넸어요.

“얘야, 화가들은 자신의 그림을 통해서만 말할 수 있단다. 안녕!”

현웅이 꾸벅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드니 공중에는 포르르 먼지만 떠다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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