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바위 얼굴
너새니얼 호손 · 1804~1864

너새니얼 호손





넓은 골짜기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 선량한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짙은 숲에 둘러싸인 가파르고 울퉁불퉁한 언덕을 따라 통나무집을 짓고 살았다. 어떤 이들은 쾌적한 농가에 자리를 잡고, 가벼운 비탈이나 평지의 비옥한 농토를 갈았다. 사람들로 붐비는 마을에 모여 사는 이들도 있었다. 마을에서는 산꼭대기에서 흘러내리는 급류를 이용해 목화 생산 공장의 기계를 돌리기도 했다.

이처럼 골짜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마을 사람들 모두는 큰 바위 얼굴에 친밀감을 갖고 있었다. 이 위대한 자연현상에 유난히 감동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큰 바위 얼굴은 자연이 장엄한 장난기를 발동해 만들어 낸 작품이었다. 깎아지른 듯한 산비탈에 거대한 바위 덩어리 몇 개가 모여 있는데, 바위 덩어리끼리 잘 어울려 적당한 거리에서 보면 마치 사람의 얼굴을 닮아 있었다.

높이가 33미터나 되는 넓은 아치형 이마, 기다란 콧날과 커다란 입술. 그 입술이 말을 한다면 천둥소리가 골짜기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울려 퍼질 것이다.

가까이 다가서면 거대한 얼굴 형태는 사라지고, 함부로 포개진 거대한 바위 덩어리만 보인다. 하지만 뒤로 물러서면 신기한 모습이 다시 나타나는데, 거리가 멀어질수록 점점 더 사람의 얼굴과 닮아 간다. 더욱이 그 얼굴은 완벽한 신성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스라이 멀어질 즈음이면 구름과 찬란한 산안개에 싸여 큰 바위 얼굴은 정말로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 날 해가 질 무렵, 어머니와 어린 소년이 자기네 오두막집 문 앞에 앉아 큰 바위 얼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큰 바위 얼굴이 어니스트에게 미소를 보냈다.

“엄마, 큰 바위 얼굴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저렇게 친절한 얼굴인 것을 보면 목소리도 상냥할 거예요. 저런 얼굴을 닮은 사람을 본다면, 그 사람을 진짜로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언이 맞는다면 우리는 언제고 저 얼굴과 똑 닮은 사람을 만나게 될 거야.”

엄마가 대답했다.

“예언이라고요? 무슨 예언인지 들려주세요, 엄마.”

어니스트가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졸랐다.

어머니는 어니스트보다 더 어렸을 적에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옛날 옛적 골짜기에 살던 인디언이 그들의 조상에게 들었고, 그 조상들은 산속 시냇물과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에게 들었다는 오래된 이야기였다.

언젠가는 마을 근처에서 한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는 가장 고귀하고 위대한 인물이 될 것이며, 어른이 되면 큰 바위 얼굴과 똑같이 닮아 있을 거라는 내용이었다.

많은 이들이 아직도 이 오래된 예언을 믿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일부 세상 물정에 밝은 사람들은 허황된 이야기라고 결론짓기도 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예언 속의 위대한 인물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어니스트가 머리 위로 손을 마주치며 외쳤다.

“엄마, 엄마! 그 사람을 내가 만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

생각이 깊은 어니스트의 어머니는 아들의 소망을 깨뜨리지 않으려고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될 거야.”

그 뒤로 어니스트는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를 한순간도 잊지 않았다.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볼 때마다 그 이야기를 떠올렸다.

어니스트는 어머니에게 순종했고, 사랑을 간직한 마음으로 언제나 어머니를 도우며 살았다.

이처럼 행복하고 가끔 깊은 생각에 잠기는 아이는 온순하고 겸손한 소년으로 자랐다. 소년은 밭에서 일하느라 검게 그을렸지만, 유명한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소년들보다 훨씬 더 똑똑해 보였다. 그렇다고 어니스트에게 선생님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큰 바위 얼굴이 선생님 같은 존재였다.

하루 일을 끝내고 나면, 어니스트는 큰 바위 얼굴을 몇 시간이고 바라보았다. 그러면 큰 바위 얼굴이 자기를 알아보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격려해 주거나, 존경심 가득한 자신의 눈길에 화답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무렵, 예언에 이른 대로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위대한 인물이 마침내 나타났다는 소문이 골짜기에 퍼져 나갔다.

여러 해 전에 한 젊은이가 골짜기를 떠나 먼 항구 도시에 정착했고, 그곳에서 약간의 돈을 벌어 가게를 차렸다. 그의 이름은 개더골드(Gather Gold : 황금을 모으는 사람)라고 했다. 영리하고 민첩한 데다 세상 사람들이 운이라고 부르는 하늘이 내린 뛰어난 재능을 발휘해 젊은이는 엄청나게 돈이 많은 상인이 되었다. 재산을 헤아리는 데만 해도 수백 년이 걸릴 만큼 큰 부자가 되자, 개더골드는 고향을 떠올렸다. 고향으로 돌아와 자기가 태어난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기로 결심하고, 솜씨 좋은 목수를 보내 궁궐 같은 집도 짓도록 했다.

앞에서 말했듯이 개더골드 씨가 오랜 세월 애타게 기다려 온 예언 속의 인물임이 틀림없으며, 얼굴 또한 큰 바위 얼굴과 완전히 닮았다는 소문이 골짜기에 퍼져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아버지의 낡을 대로 낡은 농가 터에 마술처럼 화려한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본 사람들은 그 소문이 영락없는 사실이라고 더욱 굳게 믿었다.

우리의 친구 어니스트 역시 예언 속의 위대하고 고귀한 인물이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고향 마을에 등장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레었다. 아직 어린 소년이던 어니스트는 큰 부자인 개더골드 씨가 자선의 천사가 될 것이며, 큰 바위 얼굴의 미소처럼 너그럽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사람들을 돌보아 주리라고 믿었다.

소년은 계곡을 응시하며, 늘 그래 왔듯이 큰 바위 얼굴 또한 자신을 바라볼 것이라고 상상의 날개를 펴고 있었다. 그때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빠르게 달려오는 마차 소리가 들렸다.

“그가 온다!”

개더골드를 보러 모여든 사람들이 외쳤다.

길모퉁이를 돌아 네 마리 말이 끄는 마차가 달려왔다. 마차 창밖으로 작달막한 노인이 얼굴을 살짝 내밀었다.

“큰 바위 얼굴과 똑같다!”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다.

“분명 예언이 실현되었다. 드디어 위대한 분이 나타나셨다.”

어니스트는 사람들이 그를 보고 큰 바위 얼굴과 똑같다고 믿는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길가에는 먼 곳에서 이 골짜기까지 흘러 들어온 거지들이 있었다. 거지들은 마차가 지나가자 손을 내밀며 가엾은 목소리로 구걸했다. 마차 창밖으로 누런 손이 나오더니 땅바닥에 동전 몇 닢을 떨어뜨렸다.

어니스트는 탐욕에 가득 찬 얼굴로부터 고개를 돌려 계곡을 바라보았다. 안개가 밀려드는 가운데 마지막 저녁 햇살을 받으며 큰 바위 얼굴이 반짝이고 있었다. 아직은 영혼을 울리는 그 찬란한 모습을 분간할 수 있었다. 얼굴은 어니스트를 위로하고, 자비로운 입술은 무어라고 말을 하려는 듯했다.

‘그는 온다! 어니스트, 의심하지 마라. 그는 올 것이다!’

세월이 흘렀고, 어니스트도 더 이상 소년이 아니었다. 그는 젊은이가 되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관심을 갖는 일은 없었다. 하루 일을 끝내고 아직도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긴다는 것 말고는 특별한 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마저 사람들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큰 바위 얼굴이 어니스트의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그 얼굴에 깃든 정서가 이 젊은이의 마음에 아량을 심어 주고, 다른 사람보다 더욱 넓고 깊은 인정을 갖게 해 준다는 사실을 알 리 없었다. 더구나 큰 바위 얼굴에서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보다 더욱 소중한 지혜와 다른 사람들의 인생보다 더욱 값진 인생을 배울 수 있다는 것 또한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 개더골드 씨가 죽어 땅에 묻혔다. 이상한 것은 그의 육신과 영혼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재산이 죽기 전에 모두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황금이 사라질 무렵부터 사람들은 몰락한 상인의 비천한 얼굴과 산 위의 장엄한 얼굴 사이에는 닮은 점이 하나도 없다고 수군대기 시작했다.

그 골짜기에서 태어나 여러 해 전 군대에 들어가 치열한 전투를 수없이 치르면서 이제는 유명한 장군이 된 사람이 있었다. 본명은 알 수 없었지만 군대나 전쟁터에서는 그를 올드 블러드 앤드 선더(Old Blood And Thunder : 피와 천둥의 노인)라는 별명으로 부르고 있었다.

전쟁터를 누비던 이 용사도 늙고 병들었다. 오랫동안 귓전에서 맴돌던 전쟁터의 떠들썩함과 북소리, 나팔 소리도 싫증이 났다. 그는 고향에 돌아가 편히 쉬고 싶다고 발표했다.

사람들은 장군을 성대히 맞이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사람들을 들뜨게 한 것은 장군이 큰 바위 얼굴과 닮았다는 사실이었다. 장군과 학교를 함께 다니거나 어린 시절 그를 알던 사람들이 이 사실을 증언했던 터였다.

골짜기는 흥분의 도가니였다. 사람들은 장군이 어떻게 생겼는지 가늠해 보기 위해 여러 해 동안 거들떠보지도 않던 큰 바위 얼굴을 다시 바라보았다.

마침내 큰 잔치가 베풀어지는 날이었다. 어니스트도 다른 사람들처럼 일손을 놓고 잔치가 벌어진 숲으로 향했다. 우리 친구 어니스트는 이 저명한 손님을 보기 위해 발꿈치를 들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축사와 연설, 그뿐만 아니라 장군의 답사를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많은 사람들로 혼잡스러웠다. 게다가 호위병들이 총검을 휘둘러 사람들을 밀어냈다.

결국 온순한 어니스트는 뒤로 밀려났고, 장군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는 마음을 달래려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았다. 숲 사이로 멀리 보이는 얼굴은 오래된 충직한 친구처럼 그를 마주 보며 웃어 주었다. 이때 전쟁 영웅과 먼 산 위에 새겨진 큰 바위 얼굴을 비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굴이 똑 닮았네. 머리카락까지 말이야!”

한 사람이 신이 나서 껑충껑충 뛰기까지 했다.

“정말 그래, 정말이야!”

다른 사람이 맞장구를 쳤다.

“아무렴! 올드 블러드 앤드 선더 자신이 커다란 거울에 비친 것 같아!”

또 다른 사람이 소리 질렀다.

곧이어 세 사람이 함께 소리쳤다. 그러자 전류가 흐르듯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고, 그 소리는 산속 멀리 울려 퍼졌다.

그때 어떤 사람이 크게 외쳤다.

“쉿, 조용히 하시오! 올드 블러드 앤드 선더 씨가 곧 연설을 시작하십니다.”

식사가 끝나고, 박수갈채 속에 사람들은 장군의 건강을 기원하는 축배를 들었다. 장군이 감사의 인사를 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어니스트는 그를 보았다. 많은 사람들의 어깨너머 월계수가 얽힌 푸른 나뭇가지 아치와 이마에 그늘을 드리우는 깃발 아래, 찬란한 견장과 수놓은 깃을 뽐내며 그가 있었다. 그리고 숲 사이로 큰 바위 얼굴도 함께 시야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증언한 대로 장군과 큰 바위 얼굴 사이에는 닮은 점이 있었을까? 애석하게도 어니스트는 그런 점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는 전쟁에 시달리고 세상사에 찌든 얼굴을 보았을 뿐이다. 정력이 넘쳐나고, 강철 같은 의지가 드러나는 얼굴이었지만, 현명한 지혜와 깊고 너그러우며 온화한 인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예언 속 인물이 아니야. 더 기다려야 하나 보다.’

어니스트는 한숨을 지으며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왔다.

평화로운 가운데 여러 해가 빨리 흘러갔다. 어니스트는 여전히 고향 골짜기에 살고 있었다. 이제 그도 중년이 되었다. 그리고 아주 조금씩이지만, 사람들 사이에 알려지고 있었다. 여전히 그는 생계를 위해 일을 했으며, 예전과 다름없는 소박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껴 왔으며, 인생의 황금기 대부분을 인류를 위해 봉사하고 싶다는 숭고한 희망을 꿈꾸는 데 바쳤다. 천사와 대화를 나누며, 지혜를 전수받아 온 것처럼 보였다.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전도사가 되어 있었다. 순수하고 숭고한 그의 소박한 사상은 고요히 그의 손에서 시작되고, 그의 말에서 흘러나와 아름다운 행동으로 나타났다. 그는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진리를 말했다. 그의 말을 듣는 사람들은, 그들의 이웃이요 친한 친구인 어니스트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은 냉정을 되찾았다. 올드 블러드 앤드 선더 장군의 사나운 얼굴과 자비로운 큰 바위 얼굴은 서로 닮은 구석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다시 한 번 큰 바위 얼굴과 닮았다는 얼굴이 한 유명한 정치가의 어깨 위에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신문에도 그런 기사가 자주 등장했다. 그는 개더골드 씨나 올드 블러드 앤드 선더 장군처럼 이 골짜기 출신으로, 어린 시절 이곳을 떠나 법률과 정치 관련 일을 해 왔다. 부자의 재산이나 장군의 칼 대신 그는 달랑 세 치 혀를 가졌을 뿐이지만, 혀는 그 둘보다 강했다. 기막힌 웅변 실력으로 그는 무엇을 말하든 청중에게 믿음을 주었다. 실제로 그는 비범한 인물이었고, 말솜씨를 앞세워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성공을 거두었다.

마침내 고향 사람들은 그의 말솜씨에 매료되어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하기로 뜻을 모았다. 한편 그가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할 무렵, 그의 추종자들은 그가 큰 바위 얼굴과 닮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뒤 이 유명한 신사는 올드 스토니 피즈(Old Stony Phiz : 늙은 바위 얼굴)라는 이름으로 전국에 알려졌다.

동료들이 대통령 만들기에 총력을 기울이는 동안, 올드 스토니 피즈는 고향을 방문하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고향에서는 이 유명한 정치인을 맞으려는 준비가 착착 이루어졌다. 기마행렬이 그를 마중하러 주 경계선으로 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생업을 제쳐 두고 그가 지나는 모습을 보기 위해 길거리에 늘어섰다. 그중에는 어니스트도 있었다.

요란한 말굽 소리와 함께 먼지를 날리며 기마행렬이 밀려왔다. 먼지 때문에 어니스트는 큰 바위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사람들이 모자를 벗어 던지며 소리 질렀다. 산불이 번져 가듯 뜨거운 열기가 사람들 사이에 퍼져 나갔다. 어니스트도 흥분해서 모자를 위로 던지며 커다란 소리로 외쳤다.

“영웅 만세! 올드 스토니 피즈 만세!”

하지만 아직 그를 보지 못했다.

어니스트 옆에 섰던 이들이 외쳤다.

“그가 왔다! 저기, 저기라고! 올드 스토니 피즈 좀 봐. 그리고 산 위의 얼굴을 보라고. 쌍둥이처럼 똑같잖아!”

떠들썩한 행렬 한가운데 네 마리 말이 끄는 뚜껑 없는 사륜마차가 달려왔다. 마차에는 유명한 정치가, 올드 스토니 피즈가 그 큰 머리에 모자를 쓰지 않은 채 앉아 있었다.

“정말이네! 큰 바위 얼굴이 이제야 제 짝을 만났군!”

어니스트 옆에 있던 사람이 말했다.

솔직히 마차에서 인사를 하며 미소 짓는 얼굴을 처음 보았을 때, 어니스트는 그 얼굴과 산 위의 친근한 얼굴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숭고함과 당당함, 그리고 거룩한 사랑을 간직한 큰 바위 얼굴의 위대한 표정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어니스트는 우울한 마음으로 그 자리를 떠났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세월은 어니스트에게 흰머리와 주름살을 남겨 주었다. 그는 이제 노인이 되었지만 헛되이 나이만 먹은 것은 아니었다. 영혼에는 흰머리보다 풍성하고 현명한 생각이 깃들어 있었고,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는 주름살에는 인생의 항로를 거치면서 검증해 놓은 지혜가 새겨져 있었다.

이제 어니스트는 이름 없는 존재가 아니었다. 찾지도 원하지도 않았건만, 많은 사람들이 소망하는 명예가 찾아왔다. 이제 그는 조용히 살고 있는 그 골짜기를 넘어 넓은 세상에 알려졌다.

어니스트가 늙어 가고 있을 때 한 시인이 등장했다. 역시 골짜기 출신인 시인은 이 낭만 가득한 고장을 떠나 먼 곳에서 생애 대부분을 보내며, 소란스럽고 복잡한 도시 생활 한가운데서 달콤한 음률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시인은 이따금 어린 시절 친숙했던 눈 쌓인 산봉우리들을 찬미했다. 잊지 않고 큰 바위 얼굴에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큰 바위 얼굴이 자신의 거대한 입으로 읊조리는 듯한 장엄한 송시였다. 천재 시인은 그 놀라운 재능을 하늘로부터 받았다고 믿고 있었다.

어니스트는 시인의 시집을 구해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자신의 오두막집 앞에 놓인 긴 의자에 앉아 시를 읽었다.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며 오랜 세월 깊은 생각에 잠기곤 하던 곳이었다. 그는 마음을 울리는 시를 읽으며, 눈을 들어 인자하게 미소 짓고 있는 거대한 얼굴을 보았다.

‘이 시인이야말로 당신을 닮을 자격이 있지 않겠습니까?’

얼굴은 웃는 듯했지만 아무 말이 없었다.

한편 비록 먼 고장에서 살고 있었지만 시인도 소문을 듣고 어니스트를 존경했다. 시인은 스스로 깨친 지혜와 고귀한 생활의 단순함이 일치하는 이 사람을 만날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래서 시인은 어느 여름날 아침에 기차를 타고, 늦은 오후에 어니스트의 오두막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역에 내렸다. 예전에 개더골드 씨의 저택이던 고급 호텔이 가까이 있었지만 시인은 어니스트의 집을 찾아 그곳에서 묵기로 했다. 문 앞에는 선량한 노인이 한 손에 책을 들고 있었다. 노인은 책을 읽다 책갈피에 손가락을 끼우고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곤 했다.

“안녕하십니까? 여행 중인데 하룻밤 묵을 수 있겠는지요?”

시인이 물었다.

“물론이지요. 큰 바위 얼굴이 낯선 손님을 이처럼 반긴 적은 없는 것 같은데요.”

어니스트가 대답했다.

시인은 긴 의자에 앉아 어니스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인은 가장 재주 많고 가장 현명하다는 이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다. 하지만 어니스트처럼 사상과 감정이 자연스레 흘러나오고, 위대한 사상을 소박한 말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니스트도 시인이 영혼 깊숙한 곳에서 뱉어 내는 생동감 넘치는 생각에 푹 빠져 들었다.

어니스트는 큰 바위 얼굴이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몸을 숙인다고 상상하면서 시인에게 귀 기울였다. 어니스트가 시인의 빛나는 눈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며 물었다.

“손님은 특별한 분 같군요. 어떤 분이십니까?”

시인은 어니스트가 읽던 책 위에 자신의 손가락을 얹어 놓았다.

“시집을 읽으셨지요? 그럼 저를 아실 겁니다. 제 시집이지요.”

어니스트는 한결 진지하게 시인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그러고는 큰 바위 얼굴을 보더니 다시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손님을 보았다. 어니스트는 실망한 듯 한숨을 지었다.

“왜 그렇게 슬퍼하세요?”

시인이 물었다.

“평생 동안 예언이 실현되기를 기다려 왔습니다. 사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예언이 이 시인을 통해 실현되지 않을까 기대했지요.”

어니스트가 대답했다.

시인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제가 큰 바위 얼굴과 닮았으리라 기대하셨군요. 그리고 개더골드 씨, 올드 블러드 앤드 선더 장군, 올드 스토니 피즈 때문에 그랬듯이 실망하셨군요. 부끄럽고 슬픈 일이지만, 저는 저 인자하고 장엄한 얼굴에 비할 가치가 없는 인간입니다.”

“왜죠? 이 사상이 위대하지 않다는 말씀인가요?”

어니스트가 시집을 가리키며 물었다.

“물론 시에는 신성함과 천국의 노래에 대한 화답도 담겨 있지요. 하지만 어니스트 씨, 제 삶은 제 사상과 일치하질 않는답니다. 저도 웅대한 꿈을 지니고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꿈일 뿐이었지요. 하찮고 보잘것없는 현실 속에서 살아온 탓입니다. 제 작품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는 자연과 인간의 삶 속에 존재하는 숭고함과 아름다움, 선함에 대한 믿음을 확신하지 못하는 때도 더러 있습니다. 그러니 선과 진실을 찾는 순수한 탐구자인 당신께서 제 모습에서 신성한 큰 바위 얼굴을 찾으려 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답니다.”

시인이 눈물을 글썽이며 슬프게 말했다. 어니스트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해가 질 무렵, 어니스트는 야외에서 이웃 사람들에게 강연을 해야 했다. 오랜 습관 같은 일이었다. 그와 시인은 팔짱을 낀 채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강연 장소로 걸어갔다. 언덕에 둘러싸인 아늑한 곳이었다.

어니스트는 영혼과 마음에서 울려 나오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 그의 말은 그의 사상과 일치했기 때문에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사상은 그가 살아온 인생과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에 진실과 깊이를 지니고 있었다. 이 설교자의 말은 단순한 울림이 아니라 생명의 말이었다. 선량한 행위와 숭고한 사랑으로 채워진 삶이 녹아 있는 까닭이었다.

어니스트의 이야기를 듣던 시인은 어니스트의 인생과 인품이 자기의 시보다 훨씬 고귀하다고 생각했다. 시인의 눈에 눈물이 반짝였다. 시인은 그 존경스러운 사람을 우러러보았다. 자랑스러운 백발이 흩날리는 부드럽고 다정하며 사려 깊은 얼굴보다 예언가나 성자에 가까운 얼굴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저 멀리 큰 바위 얼굴이 황금빛 저녁노을에 반짝이며 뚜렷이 보였다. 바위를 둘러싼 흰 안개가 마치 어니스트 이마 위에 흐트러진 흰 머리카락처럼 보였다.

그 순간, 말하려는 사상과 조화를 이루어 어니스트의 얼굴은 자비심이 깃든 숭고한 표정을 연출했다. 시인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팔을 높이 쳐들고 소리쳤다.

“여길 보세요! 어니스트야말로 저 큰 바위 얼굴과 닮았습니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어니스트를 쳐다보았다. 현명한 시인의 말이 맞았다. 마침내 예언이 실현되었다. 하지만 강연을 마친 어니스트는 시인의 팔을 잡고 천천히 걸어 집으로 돌아갔다. 어니스트는 여전히 자기보다 더욱 현명하고 훌륭한 사람,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이 조만간 나타나길 소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