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톨스토이 · 1828~1920

톨스토이





도시 상인에게 시집간 언니가 시골 농부와 결혼한 동생을 찾아왔다. 두 자매는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니가 도시 생활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언니의 이야기에 골이 난 동생은 상인의 생활을 깎아내리고, 농부의 생활을 치켜세웠다.

“언니의 생활과 내 생활을 바꿀 생각은 없어. 우리는 풍족하게 살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걱정거리는 없거든. 언니네는 우리보다 잘살겠지. 하지만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벌어들인다 해도 어느 날 가진 걸 몽땅 잃을 수도 있잖아. 도시에는 온갖 유혹이 가득해. 오늘 아무 일 없더라도 내일 악마가 형부를 노름이나 술, 또는 여자로 유혹해 모든 게 끝장나 버릴지도 모르잖아. 안 그래?”

동생의 남편인 파흠이 벽난로 옆에 앉아서 여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맞는 말씀! 우리 농부들이야 어릴 적부터 땅을 갈아 왔으니, 어리석은 생각이 머릿속에 파고들 틈이 없지. 단 하나 걱정거리가 있다면 땅이 충분하지 않다는 거지만. 땅만 많다면 악마도 두렵지 않을 텐데.”

그런데 그때 악마가 벽난로 뒤에 앉아 이 말을 들었다. 악마는 농부의 아내가 남편을 우쭐하게 만들어, 남편이 땅만 많다면 악마도 무섭지 않다고 떠벌리는 것을 보니 즐거웠다.

‘좋아, 한판 붙어 보자고. 너에게 땅을 많이 주겠어. 땅으로 너를 사로잡겠어.’

마을 근처에 여자 지주가 살고 있었는데, 120데샤티나(1데샤티나는 약 1만 제곱미터) 정도 되는 그다지 넓지 않은 땅을 가지고 있었다. 여자 지주는 그동안 농부들과 잘 지내 왔다. 그런데 늙은 군인이 새 관리인으로 고용되면서부터 그는 농부들을 벌금으로 괴롭히기 시작했다.

파흠이 아무리 조심을 해도 말이 지주의 귀리밭에 들어가거나, 암소가 지주의 정원으로 들어가거나, 송아지가 풀밭으로 뛰어들거나 했는데, 그때마다 벌금을 물어야 했다. 파흠은 투덜거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벌금을 내야 했고, 씩씩거리며 집으로 돌아와서는 가족을 못살게 굴었다.

여름 내내 파흠은 관리인 때문에 고생이 많았다. 겨울이 되어 가축을 우리에 들여놓게 되자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물론 사료가 아까웠지만 걱정거리는 없어졌다.

겨울 동안 여자 지주가 땅을 팔려고 하는데, 큰길 여인숙 주인이 그 땅을 사려 한다는 소문이 들렸다. 농부들은 무척 놀랐다.

‘여인숙 주인이 땅 임자가 되면, 지금의 지주네 관리인보다 더 지독하게 괴롭힐 거야.’

농부들 몇 명이 마을 공동체를 대표해 여자 지주를 찾아가 여인숙 주인에게 땅을 팔지 말라며 더 나은 가격을 제시했다. 여자 지주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농부들은 마을 사람들 공동의 소유가 되도록 마을 공동체에서 여자 지주의 땅을 모두 사들이려는 계획을 세우고, 두 번이나 회의를 했지만 의견을 모으지 못했다. 악마가 훼방을 놓았던 것이다. 그래서 농부들은 각자 형편에 맞추어 땅을 사들이기로 했다.

파흠은 이웃 사람이 20데샤티나를 샀는데, 땅값을 반만 주고 반은 1년 뒤에 갚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파흠은 부러웠다.

‘어라, 땅이 모두 팔려 버리면 내게 돌아올 것은 없잖아.’

파흠은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른 이들도 땅을 사는데, 우리도 10데샤티나쯤 사는 게 좋겠어요. 살아가는 게 갈수록 힘들어요. 관리인이 벌금 물리는 것만 해도 그렇고.”

부부는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땅을 살지 의논했다. 그동안 모아 둔 돈이 100루블 있었다. 망아지와 벌을 팔았고, 아들 중 하나를 머슴으로 보내 품삯을 선금으로 받았다. 그래도 모자라는 돈은 동서에게 빌렸다. 이렇게 해서 땅값의 반을 긁어모았다.

파흠은 한쪽에 숲이 우거진 20데샤티나의 땅을 봐 두고, 여자 지주를 찾아가 흥정을 하고 계약금을 치렀다. 그리고 도시로 가 땅문서에 서명하고 땅값의 반을 지불했다. 나머지 땅값은 2년 안에 갚기로 했다.

이제 파흠은 지주가 되었다. 씨앗을 빌려 땅에 뿌렸다. 농사는 풍년이었고, 1년 안에 여자 지주의 땅값과 동서에게 빌린 돈을 갚을 수 있었다. 자기 땅을 갈아 씨를 뿌리고, 자기 땅에서 풀과 땔감을 베고, 자기 목초지에서 가축을 먹이는 어엿한 지주가 되었던 것이다.

파흠은 정말 만족스러웠다. 이웃 농부들이 자신의 옥수수밭이나 목초지에 함부로 들어오는 일만 없다면 정말 모든 일이 잘 풀려 나갈 것이다.

그러나 소들이 목초지에 들어와 풀을 뜯고, 말 떼가 옥수수밭을 망쳐 놓는 일이 다반사였다. 파흠은 농부들을 점잖게 타일러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래도 파흠은 소나 말을 내몰며 용서해 주었을 뿐 법에 호소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파흠은 재판소에 고소했다. 그런 일이 벌어진 건 땅이 좁은 탓이지 농부들에게 나쁜 마음이 있어 그러는 게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생각을 하면 마음 한구석이 뜨끔했지만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무작정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 내 땅을 모두 망가뜨리게 생겼는걸. 따끔한 맛을 보여 줘야 해.’

몇 명의 농부가 파흠에게 벌금을 물었다. 얼마 안 있어 이웃 사람들은 파흠을 원망하며 일부러 가축을 풀어 놓아 목초지를 망쳐 놓곤 했다. 결국, 파흠은 더 많은 땅을 가졌지만, 더 좁은 세상에서 살게 되었다. 그때 사람들이 새 고장으로 떠나려 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나야 내 땅을 떠날 이유가 없지. 가만있자, 사람들이 마을을 떠난다면 땅이 넉넉해지겠는걸. 그 땅을 사들여 땅을 좀 더 넓혀야겠구나. 그럼 지금보다 더 여유롭게 살 수 있을 거야. 지금은 아무래도 너무 좁은 것 같아.’

하루는 집에 앉아 있는데, 마을을 지나던 한 농부가 찾아왔다. 파흠은 하룻밤 묵게 해 주고, 저녁을 대접했다. 파흠은 농부에게 어디서 왔는지 물었다. 농부는 볼가 강 건너에서 왔으며, 그곳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대답했다.

대화가 무르익어 가면서 농부는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정착하고 있다는 얘기며, 자기 마을 사람들이 그곳으로 이주하게 된 사연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마을 공동체를 조직해 1인당 10데샤티나의 땅을 나누어 주었는데, 땅이 어찌나 비옥한지 밀을 뿌리면 키는 말만큼 자라고, 줄기는 하도 굵어 낫질 다섯 번으로 짚단 하나를 묶을 정도라고 했다. 맨손으로 온 한 농부는 벌써 말 여섯 마리와 소 두 마리를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잊지 않고 들려주었다.

파흠의 마음은 욕심으로 가득했다.

‘다른 곳에서 잘살 수 있다면 이렇게 좁은 곳에서 고생할 필요가 뭐 있겠어? 이곳 땅과 집을 팔아 돈을 마련해서 그곳에서 새 출발을 해야겠어.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지. 여기서는 걱정 끊일 날이 없어. 우선 직접 가서 그곳 사정을 살펴봐야지.’

자세히 사정을 알아보고 돌아온 파흠은 재산을 팔아 치우기 시작했다. 이윤을 남겨 땅을 넘기고, 집과 가축을 모두 판 다음 마을 공동체에서 탈퇴했다.

파흠은 봄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가족을 이끌고 새로운 고장으로 길을 떠났다. 새 고장에 도착하자마자 파흠은 큰 마을의 마을 공동체에 가입 신청을 했다. 그리고 마을 어른들을 대접하여 필요한 서류를 받아 냈다. 파흠은 자신과 가족의 몫으로 50데샤티나의 땅을 배당받고 목초지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파흠은 집을 짓고 가축을 구입했다. 땅만 해도 전보다 세 배나 넓었고 무척 비옥했으며, 생활도 전보다 열 배나 나아졌다. 이제 넓은 땅과 목초지를 가졌고, 가축도 마음대로 키울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집을 짓고 정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그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점차 땅이 모자란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첫해에 공동체에서 배당받은 땅에 밀을 뿌렸는데 풍년이 들었다. 다시 밀농사를 짓고 싶었지만 땅이 모자랐다. 이미 사용한 땅에는 농사를 지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고장에서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 땅이나 농사를 짓지 않고 묵혀 둔 땅에서만 밀농사를 지었다. 한두 해 밀농사를 짓고 나면 풀이 무성해질 때까지 땅을 묵혀 두어야 했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묵혀 둔 땅을 원했고, 그런 땅은 모자랐기에 사람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다.

사정이 좀 나은 사람은 직접 밀농사를 지었고, 가난한 사람들은 세금 낼 돈을 구하기 위해 상인들에게 땅을 빌려 주었다.

파흠은 밀농사를 더 짓기 위해 어떤 상인에게 1년간 땅을 빌렸다. 밀을 더 많이 뿌렸는데 이번에도 풍년이었다.

파흠은 이런 식으로 3년 동안 땅을 빌려 밀농사를 지었다. 해마다 풍년이었고, 파흠은 돈을 모을 수 있었다. 풍족한 생활을 꾸려 나갈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의 땅을 빌리려고 이웃과 다투는 일이 지겨웠다.

그래서 파흠은 땅을 구입하기로 마음먹었다. 하루는 장사꾼이 지나가다가 말에게 꼴을 먹이러 파흠의 집에 들렀다. 두 사람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장사꾼은 멀리 바시키르에서 돌아오는 길이며, 그곳에서 1000루블에 5000데샤티나의 땅을 샀다고 자랑했다. 파흠이 꼬치꼬치 캐묻자 장사꾼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마을 지도자들과 잘 사귀어 놓으면 좋답니다. 나는 100루블쯤 나가는 외투와 양탄자, 그리고 차 한 상자를 건네고, 포도주를 대접했지요. 결국 1데샤티나에 20코페이카라는 돈으로 그 땅을 얻었답니다.”

장사꾼은 파흠에게 땅문서를 보여 주었다.

“강가에 자리 잡은 그 땅은 이제까지 한 번도 농사를 짓지 않은 평원이에요.”

파흠이 계속 물어보자, 장사꾼이 말했다.

“당신이 1년 내내 걸어도 끝에 닿을 수 없을 만큼 너른 땅이 모두 바시키르 사람들 소유랍니다. 그 사람들은 양처럼 순박해요. 그러니 공짜나 다름없이 땅을 살 수 있지요.”

파흠은 그곳으로 가는 길을 물어보고, 장사꾼이 떠나자마자 떠날 준비를 했다. 집안일은 아내에게 맡기고, 하인을 데리고 여행을 시작했다. 가는 길에 시내에 들러 장사꾼이 일러 준 대로 차 한 상자와 포도주, 그리고 다른 선물을 샀다.

파흠은 500킬로미터 가까이 걸어 7일 만에 바시키르 사람들이 텐트를 치고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장사꾼이 말한 그대로였다.

파흠은 수레에서 선물을 꺼내 바시키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차를 대접했다. 바시키르 사람들은 아주 즐거워했다.

“사람들이 모두 당신을 좋아하는군요. 손님을 즐겁게 맞이하고, 선물에 답례하는 것이 우리의 전통입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선물을 주었으니, 우리가 가진 것 중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지요. 우리가 그것을 당신에게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마을 촌장이 말했다.

“그것은 땅입니다.”

파흠이 대답했다.

“좋아요, 그렇게 하시지요. 마음대로 골라 가지세요. 땅이야 얼마든지 많으니까요.”

촌장이 승낙했다.

“땅값은 얼마인지요?”

파흠이 물었다.

“땅값이야 언제나 하루에 1000루블이랍니다.”

파흠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루라니요? 어떻게 재는데요? 몇 데샤티나 정도 되나요?”

“어떻게 계산하는지는 모르겠어요. 어쨌든 하루에 얼마라는 식으로 팔지요. 당신이 하루 종일 걸은 만큼 당신의 땅이 되는 것이지요. 가격은 하루치가 1000루블이고요.”

촌장이 말했다.

“아니, 하루 종일 걷는다면 무척 넓을 텐데요?”

파흠은 깜짝 놀라 이렇게 말했다.

“그게 모두 당신 땅이지요. 다만,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하루 안에 출발 지점으로 되돌아오지 못하면 돈을 잃을 것입니다.”

촌장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걸어간 곳을 어떻게 표시하지요?”

“우리는 당신이 원하는 지점에 따라가 그곳에서 기다릴 것입니다. 당신은 삽을 가지고 그 지점을 출발해 빙 돌아오시면 됩니다. 필요하다고 생각하실 때마다 표시를 하세요. 모퉁이를 꺾어 돌 때에는 구멍을 파고 뗏장을 묻어 두세요. 나중에 우리가 돌아다니면서 구멍과 구멍을 잇는 선을 쟁기로 파면 되지요. 얼마든지 멀리 걸어가세요. 하지만 해가 지기 전에 출발 지점으로 돌아오셔야 해요. 그럼 당신이 둘러본 땅은 모두 당신 것이 됩니다.”

파흠은 무척 기뻐하며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그들은 담소를 나누며 양고기를 먹고 술과 차를 마셨다. 밤이 깊어 가자 마을 사람들은 파흠에게 깃털 이불을 건네주고 잠을 자기 위해 흩어졌다.

파흠은 깃털 이불을 덮고 누웠으나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새벽이 되어서야 간신히 잠이 들었는데, 눈을 감자마자 꿈을 꾸었다.

텐트 밖에서 누군가 킥킥 웃어 댔다. 파흠이 이상하게 여기며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 보니, 바시키르 사람들의 촌장이 텐트 앞에 앉아 배를 쥐고 몸을 흔들며 웃고 있었다. 가까이 가 보니, 그것은 촌장이 아니라 자신의 집에 들러 바시키르 사람들의 땅에 대해 말해 준 그 장사꾼이었다. 파흠이 “언제 이곳에 왔습니까?”라고 물으려는데, 장사꾼은 사라지고 오래전 볼가 강 건너에서 파흠의 옛날 집으로 찾아온 농부가 있었다. 그러더니 농부는 어느새 뿔과 발톱이 달린 악마로 변해 웃고 있었다. 악마 앞에는 속옷 바람인 한 사내가 맨발로 땅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파흠은 사내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사내는 숨이 끊어졌는데, 그것은 바로 파흠 자신이었다. 파흠은 깜짝 놀라 일어났다.

‘어유, 꿈이네.’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파흠은 열린 문 사이로 동이 터 오는 것을 보았다.

‘마을 사람들을 깨워야겠군. 슬슬 출발할 시간이야.’

파흠은 바시키르 사람들을 깨웠다. 바시키르 사람들이 준비를 마치자 그들은 함께 출발했다. 바시키르 사람들이 시칸이라고 부르는 언덕 위에 올라, 사람들은 타고 온 말과 마차에서 내려 한 지점에 모였다.

촌장이 파흠에게 다가와 한 손을 뻗어 평원을 가리켰다.

“보세요. 당신 눈이 닿는 모든 땅이 다 우리 거라오. 원하는 대로 가지시오.”

파흠의 눈이 불타올랐다. 촌장이 여우 털모자를 벗더니 땅바닥에 놓았다.

“여기 표시를 해 두었습니다. 여기에서 출발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십시오. 둘러본 땅은 모두 당신 것입니다.”

파흠이 돈을 꺼내 여우 털모자에 넣었다. 외투를 벗고 소매 없는 윗옷 바람으로 허리띠를 단단히 졸라맨 다음, 빵 주머니를 윗옷 섶에 질러 넣고 물병을 허리띠에 매달고는 장화를 단단히 고쳐 신었다.

지평선 너머로 햇빛이 솟아오르기 무섭게 파흠은 삽을 어깨에 둘러메고 초원으로 나섰다.

파흠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걸었다. 1000미터쯤 가다가 구덩이를 파고 잘 보이도록 뗏장을 여러 겹 묻었다. 다시 걸어 나갔다. 이제는 어색함을 떨쳐 버리고 걸음을 빨리 걸었다. 얼마 뒤에 다른 구덩이를 파고 또 뗏장을 묻었다. 날씨가 제법 더웠으며, 해를 보니 아침 먹을 시간이었다.

파흠은 아침을 먹은 후 바닥에 앉아 장화를 벗어 허리띠에 차고서 또다시 걸었다. 한동안 앞으로 걸어가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 멀리 희미한 언덕으로 사람들이 개미처럼 보였다.

‘이쪽으로는 충분히 왔어. 이제 방향을 꺾어야겠어. 땀을 흘리니까 목이 마르군.’

파흠은 멈춰 서서 큰 구덩이를 파고 뗏장을 묻었다. 그러고는 물병을 열어 물을 마시고 왼쪽으로 방향을 꺾어 걸어 나갔다. 풀은 높이 자라 있었고, 날은 무더웠으며, 몸은 점점 피로해졌다. 해를 쳐다보니 벌써 한낮이었다.

‘좀 쉬어야겠군.’

파흠은 주저앉아 빵을 먹고 물을 마셨다. 피곤했지만 누우면 잠이 들 것 같아 누울 수가 없었다. 조금 앉아 있다가 다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빵을 먹어 기운이 난 덕분에 처음에는 걷기가 쉬웠다. 하지만 날은 찌는 듯 덥고, 졸음은 밀려왔다. 그래도 ‘한 시간 고생하면 평생을 편하게 살 수 있다.’라고 생각하며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쪽으로 한참을 가다가 다시 구덩이를 파고 다른 쪽으로 방향을 꺾었다. 언덕을 바라보았으나 더위 때문에 모든 것이 몽롱해 보였다. 언덕이 꿈틀거리고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았다.

‘아, 두 변을 너무 길게 잡았나 봐. 이번에는 좀 짧게 잡아야지.’

파흠은 세 번째 방향으로 접어들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해를 보았다. 세 번째 방향으로 3킬로미터 정도밖에 걷지 않았는데, 해는 벌써 지평선 쪽으로 반이나 기울어 있었다. 출발 지점까지는 15킬로미터 정도 남았는데 말이다.

‘안 되겠어. 땅 모양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해도 이젠 직선 방향으로 해서 돌아가야겠어. 더 갈 수도 있겠지만 이걸로도 충분해.’

파흠은 서둘러 구덩이를 파고 언덕을 향해 곧바로 나아갔다. 그러나 걷기가 너무 힘들었다. 더위에 지친 데다 장화를 벗은 발은 풀에 베고 여기저기 멍들었으며, 다리는 금방이라도 꺾일 것 같았다. 쉬고 싶었지만 해가 지기 전에 돌아가려면 그럴 수 없었다. 해는 사정을 봐주지 않고 자꾸만 기울어 갔다.

‘아이고, 너무 욕심을 낸 건 아닐까! 늦으면 어떡하지?’

언덕과 해를 번갈아 보며 걸었다. 아직도 출발 지점은 멀었고, 해는 막 지려 했다. 파흠은 걷고 또 걸었다. 너무나 힘이 들었지만 더욱 빨리 걸었다. 걸음을 재촉했지만 아직도 갈 길은 한참 남아 있었다. 파흠은 외투와 장화와 물병과 모자를 모두 집어던지고 삽을 지팡이 삼아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좋지. 너무 많이 욕심을 내다 모든 걸 망쳐 버렸어.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하지 못하겠어.’

달리고 달려 언덕 가까이 이르자 바시키르 사람들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이 소리를 듣자 그의 마음은 더욱 달아올라 안간힘을 다해 달렸다.

해는 지평선에 닿았다. 안개 속에 숨은 커다란 해는 피처럼 붉게 보였다. 이제 막 해가 지려 했다! 해는 거의 가라앉으려 하고, 파흠은 출발 지점에 거의 다다랐다. 파흠은 어서 달려오라고 손을 흔들어 신호를 보내는 언덕 위의 사람들을 보았다. 땅바닥에 놓인 여우 털모자와 그 속에 들어 있는 돈도 보았다. 촌장이 바닥에 앉아 배를 쥐고 웃고 있었다. 파흠은 간밤의 꿈을 떠올렸다.

‘넓은 땅이 있다지만, 하느님께서 나를 그곳에 살게 허락해 주실까? 나는 망했어, 나는 망했어! 저곳에 닿을 수 없을 거야!’

파흠은 땅에 내려앉으려는 해를 보았다. 해의 한쪽은 벌써 사라진 뒤였다. 파흠은 남은 힘을 다해 달렸다. 앞으로 몸을 잔뜩 숙였기에 고꾸라질 것만 같았다. 언덕에 도착하자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졌다. 고개를 들어 보니 이미 해가 기운 뒤였다. 파흠은 울음을 터뜨렸다.

‘모든 게 물거품이 되었구나.’

이렇게 생각하며 멈춰 서려는데, 바시키르 사람들의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불현듯 언덕 아래에서는 해가 진 것으로 보이지만, 사람들이 서 있는 언덕 위에서는 아직도 해가 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흠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언덕 위로 달려갔다. 언덕 위에는 아직 빛이 남아 있었다. 파흠은 언덕 꼭대기에 도착해 모자를 보았다. 모자 앞에 촌장이 앉아 배를 쥐고 웃고 있었다. 파흠은 다시 한 번 꿈을 떠올리더니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곧 앞으로 쓰러지면서 모자를 움켜쥐었다.

“정말 대단합니다! 넓은 땅을 차지했군요!”

촌장이 소리쳤다.

하인이 달려와 부축하려는데, 파흠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죽은 것이다!

바시키르 사람들은 불쌍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하인은 삽으로 파흠이 묻힐 무덤을 팠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2미터 남짓한 땅, 이것이 파흠에게 필요한 땅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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