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이반
톨스토이 · 1828~1920

톨스토이





옛날 어느 나라에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둔 농부가 살고 있었다. 첫째 아들 세묜은 왕의 군대에 들어갔고, 둘째 아들 타라스는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떠나 있었다. 그래서 집에는 늘 바보 취급을 당하는 셋째 아들 이반만이 남아 귀머거리 누이동생 말라냐와 부모님을 돌보며 농사를 짓고 있었다.

전쟁에 나가 공을 세운 세묜은 높은 벼슬과 많은 땅을 얻었고, 귀족의 딸과 결혼도 했다. 그러나 아내가 돈을 물 쓰듯 하는 바람에 생활이 점점 쪼들렸다

살림이 기울자, 세묜은 아버지를 찾아왔다.

“아버지의 땅 3분의 1을 저에게 주십시오.”

아버지는 그 일을 이반과 의논했는데, 이반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형님이 원하는 대로 해 주세요.”

그래서 세묜은 자기 몫의 땅을 받아 돌아갔다.

장사 수완이 좋은 타라스 역시 돈을 많이 벌었고, 또 부잣집 딸과 결혼도 했다. 하지만 형이 땅을 받았다는 말을 듣자, 득달같이 달려와 아버지에게 말했다.

“형님에게 주신 것처럼 제게도 재산을 나누어 주세요.”

아버지가 이반의 앞날을 걱정하자, 타라스가 이반에게 말했다.

“얘야, 집에 있는 곡식의 절반만 주렴. 그리고 저 회색 말은 내가 가져가마.”

이반은 형이 원하는 것을 기꺼이 내주었다. 이반은 형들의 행동을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더 열심히 일해서 부모님과 누이동생을 잘 돌보겠다고 마음먹을 뿐이었다.

한편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고 싸우기를 바라는 악마의 두목은 이반네 세 형제가 사이좋게 재산을 나누는 모습을 보고 몹시 화가 났다.

두목은 당장 부하들인 악마 형제 셋을 불러 호통을 쳤다.

“이반 형제들의 이야기는 들었겠지? 그 녀석들이 재산을 나누면서도 큰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니 괘씸한 일이다. 너희는 무슨 수를 쓰든 저 형제들 사이를 갈라놓아야 한다. 만약 실패한다면 큰 벌을 받을 줄 알아라!”

“어려울 것 없어요. 세 사람을 모두 알거지로 만든 다음에, 한 집에 모여 살게 하면 돼요. 그러면 아무리 마음씨 착한 형제라 해도 싸우지 않고는 견딜 수 없거든요.”

“알았다. 실수 없이 해야 한다.”

악마 형제들은 숲 속에 들어가 각자 맡을 일을 정하고,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헤어졌다.

얼마 후, 약속한 날짜에 다시 모인 악마들은 저마다 자기가 한 일을 이야기했다.

먼저, 첫째 악마가 말했다.

“나는 세묜에게 분별력 없는 용기를 주었어. 기고만장해진 녀석은 왕에게 전쟁을 일으켜 인도를 정복하겠다며 큰소리를 쳤지. 나는 그날 밤 세묜의 군대가 가진 화약을 몽땅 물에 적셔 놓았어. 그뿐인가, 지푸라기로 인도 병사들을 잔뜩 만들었지. 세묜의 병사들은 그 많은 인도 병사들을 보고 겁을 먹었어. 게다가 젖은 화약이 터지질 않자 모두 도망가 버렸지. 그 일로 세묜은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데, 석방되면 어깨가 처진 채 이반을 찾아갈 거야.”

이어서 둘째 악마가 타라스에게 한 일을 자랑스레 늘어놓았다.

“나는 타라스에게 허영심을 불어넣어서 무엇이든 사들이게 했지. 그리고 그가 사들인 물건들을 모두 못 쓰게 만들어 버렸어. 그 바람에 녀석은 쫄딱 망했어. 이제 빚쟁이들에게 쫓기다가 하는 수 없이 이반에게 갈 거야.”

그러나 이반에게 갔던 셋째 악마는 기가 죽어 있었다.

“이반은 지독한 녀석이야. 우선 배탈이 나게 만들었지. 그러고는 땅을 모두 딱딱하게 만들어 버렸어. 그런데 그 미련한 녀석은 아픈 배를 움켜쥐고서 쟁기질을 하는 거야. 쟁기의 날을 부러뜨려도 소용없었어. 녀석은 새 날을 갈아 끼우더니 다시 밭을 갈지 뭐야. 땅속에 들어가서 녀석의 쟁기를 꽉 붙잡았다가 녀석이 힘껏 휘두르는 바람에 상처만 입었어.”

셋째 악마는 다친 손가락을 보이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아무래도 형들이 나를 도와주어야겠어.”

“알았다. 우리가 도와주마.”

이튿날, 이반은 여전히 쟁기질을 하고 있었다. 배가 아팠지만 꾹 참고 일했다. 그런데 땅속에 박힌 쟁기가 무엇에 걸린 듯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땅속에 손을 넣어 본 이반은 뭔가 물컹거리는 것을 꽉 잡아 꺼냈다.

그것은 새까만 셋째 악마였다 .

“사, 살려 주세요. 원하는 것은 뭐든 드릴게요.”

“그럼 내 아픈 배를 낫게 해 줘.”

셋째 악마는 땅속에서 세 갈래로 벌어진 풀뿌리를 뽑아 이반에게 건네주었다.

“하나만 드세요. 이건 만병통치약이랍니다.”

이반이 풀뿌리 한쪽을 찢어 먹자, 배가 씻은 듯이 나았다. 셋째 악마는 땅속으로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작은 구멍 하나가 남았다.

이반은 가지가 두 개 남은 풀뿌리를 모자 속에 넣고는 남은 밭일을 모두 마쳤다. 집에 돌아와 보니 감옥에서 나와 빈털터리가 된 맏형이 아내와 함께 와 있었다.

“얘야, 얼마간 네 신세를 좀 져야겠다.”

이반은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말했다.

그때 첫째 악마가 막내 악마를 도와주려고 이반의 밭으로 갔다. 그런데 밭에는 작은 악마 구멍 하나가 뚫려 있을 뿐이었다.

‘이런, 막내가 당한 모양이군. 이미 밭을 다 갈았으니, 목장을 못 쓰게 만들어야지.’

첫째 악마는 밤새 이반의 목장에 큰물이 들게 하여 풀밭을 온통 진흙탕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튿날 아침, 이반은 진흙탕도 아랑곳하지 않고 풀을 베기 시작했다. 첫째 악마는 낫질이 힘들도록 낫 등에 올라타 힘껏 눌렀다. 그러자 이반은 숫돌을 가져다가 낫을 쓱쓱 갈더니 힘차게 다시 낫질을 해 나갔다. 그 바람에 낫 등에 올라타고 있던 첫째 악마가 튕겨 나가면서 그만 꼬리가 반이나 잘려 버렸다.

풀을 다 벤 이반은 아예 호밀까지 다 베어 다발로 묶어 놓았다.

“후유, 이제 귀리 베는 일만 남았군.”

이튿날 아침, 귀리밭을 찾은 첫째 악마는 맥이 탁 풀려 버렸다. 부지런한 이반이 간밤에 귀리를 다 베어 냈기 때문이었다.

첫째 악마는 호밀 다발 사이로 들어가 뜨거운 열을 내어 호밀을 썩히기 시작했다. 그런데 호밀 다발이 따뜻해지자 첫째 악마는 그 속에서 잠이 들고 말았다. 마침 호밀 다발을 거둬들이려고 나왔던 이반이 꼬리 잘린 악마를 발견했다.

‘앗, 이 녀석이 여기서 잠들었군.’

이반이 첫째 악마를 잡아 내동댕이치려 하자, 첫째 악마는 두 손을 싹싹 빌면서 애원했다.

“호밀 짚단으로 병사를 만드는 주문을 알려 드릴 테니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그것을 어디다 쓰지?”

“노래를 부르게 하든 춤을 추게 하든 당신이 필요한 곳에 쓰세요.”

그래서 이반은 첫째 악마에게 호밀 짚단으로 병사를 만드는 법, 병사를 다시 짚단으로 만드는 법을 배웠다.

첫째 악마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고, 이번에도 땅에 작은 구멍 하나만 남았다.

이반이 집에 돌아와 보니 빚쟁이 신세가 된 타라스가 아내와 함께 와 있었다.

“이반, 장사를 다시 시작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를 좀 먹여 살려 다오.”

이반은 이번에도 그렇게 하라고 흔쾌히 대답했다.

그날 밤, 둘째 악마가 이반의 밭으로 나왔다. 그런데 밭에는 구멍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목장으로 가 보니 거기에도 또 다른 구멍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이런, 둘 다 당했군! 어디 두고 보자!’

이튿날, 들일을 마친 이반은 숲에서 나무를 베었다.

둘째 악마는 나무에 매달려 훼방 놓았다. 도끼질을 하던 이반은 지칠 대로 지쳐 나무 밑동에 도끼를 박아 놓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둘째 악마는 이반이 나무 베는 걸 포기한 줄 알고 기뻐하면서, 옆에 있는 나무에 올라가 편히 쉬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반이 도끼를 들어 나무 밑동을 냅다 내리쳤다. 굵은 나무가 우지끈 부러지며 둘째 악마가 있던 쪽으로 쓰러졌다.

둘째 악마는 쓰러진 나무에 손이 끼이고 말았다.

다시 나타난 악마를 보고 이반이 말했다.

“요 녀석, 어째서 다시 나타난 거냐? 어디 혼 좀 나 봐라.”

이반이 도끼를 치켜들자 둘째 악마가 사정을 했다.

“살려 주세요. 금화 만드는 법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둘째 악마는 이반에게 떡갈나무 잎을 두 손으로 비벼 금화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누런 금화가 우수수 떨어져 쌓이자, 이반은 흐뭇한 얼굴로 말했다.

“그것 참, 재미있는 놀이인걸.”

이반이 지렛대로 둘째 악마를 빼 주자, 악마는 재빨리 땅속으로 들어가 버렸고, 역시 작은 구멍 하나만 남았다.

추수를 끝낸 날, 이반은 잔치를 열고 마을 사람들을 모두 초대했다. 그러나 이반의 두 형은 시골 사람들의 잔치에 볼 게 뭐 있겠느냐며 참석하지 않았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이반은 춤추는 아낙네들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당신들에게 신기한 것을 보여 드리지요.”

빈 상자를 들고 숲 속으로 달려간 이반은 잠시 후에 금화를 가득 담아 돌아왔다.

이반이 금화를 뿌리자, 마을 사람들은 금화를 줍느라고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이번에는 또 다른 신기한 걸 보여 드릴게요.”

이반은 헛간에 가서 호밀 짚단을 흔들면서 병사가 되라고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짚단이 북과 나팔을 가진 병사들로 변해 흥겨운 연주를 시작하자, 사람들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잔치가 끝난 후, 이반은 병사들을 다시 호밀 짚단으로 만들었다.

이튿날, 맏형 세묜이 이반에게 말했다.

“얘야, 네가 수많은 병사를 만들었다가 사라지게 했다면서? 부디 내게 병사를 만들어 다오. 병사들만 많으면 나는 왕이 될 수 있어.”

“예, 그렇게 하지요. 하지만 그 병사들을 데리고 이 마을을 떠나셔야 합니다. 여기서는 그 많은 병사들을 먹여 살릴 수 없으니까 말이에요.”

이반이 호밀 짚단으로 수많은 병사들을 만들어 주자, 세묜은 병사들을 이끌고 의기양양하게 떠났다.

잠시 후, 둘째 형 타라스가 와서 말했다.

“얘야, 부디 내게 많은 금화를 만들어 다오. 그러면 나는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단다.”

“예, 만들어 드릴게요.”

이반은 타라스에게 엄청나게 많은 금화를 만들어 주었고, 타라스도 금화를 수레에 싣고 신이 나서 길을 떠났다.

세묜은 많은 병사들을 이끌고 이웃 나라를 차례로 정복해 세력을 키워 나갔다.

타라스는 금화를 밑천으로 장사를 해 큰돈을 벌었다.

어느 날, 세묜과 타라스가 만나 그동안 자신들이 겪었던 일을 서로 이야기했다.

“나는 돈이 필요해. 병사들을 먹여 살릴 양식을 사야 하니까.”

“아, 저는 재산을 지켜 줄 병사가 필요해요.”

형들은 이반에게 돈과 병사를 더 요청하기로 했다. 또한 세묜에게 병사가 생기면 타라스에게 주고, 타라스에게 돈이 생기면 세묜에게 주기로 은밀히 약속했다.

“얘야, 내게 병사를 좀 더 만들어 다오.”

세묜이 말했다.

그러나 이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형님의 병사들이 전쟁터에서 사람들을 죽였다지요? 저는 즐겁게 살라고 병사를 만들지, 서로 싸우라고 만들지는 않아요.”

이번에는 타라스가 금화를 요구하자, 이반은 또 고개를 가로저었다.

“형님네 하인이 금화를 주고 이웃집 암소를 끌고 갔다지요? 그래서 그 집 아이들은 이제 우유를 마실 수 없게 되었대요. 저는 금화 따위를 만들어 남을 괴롭히고 싶지 않아요.”

세묜과 타라스는 투덜거리며 돌아갔다. 두 사람은 하는 수 없이 자기네 병사와 금화를 나누어 가졌다.

마침내 세묜은 정복한 나라의 왕이 되었고, 타라스도 큰 부자가 되어 한 나라의 왕이 되었다.

하지만 이반은 여전히 고향에서 부모님과 여동생을 돌보며 농사를 짓고 있었다.

어느 날, 이반이 키우던 개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 이반은 모자 속에 있던 빵 한 개를 개에게 주었는데, 그때 예전에 모자 속에 넣어 두었던 만병통치약 풀뿌리 한 개가 툭 떨어졌다. 죽어 가던 개는 그 풀뿌리를 먹고 병이 나았다.

“얘야, 개를 어떻게 낫게 해 주었니?”

아버지가 묻자, 이반은 하나 남은 풀뿌리를 보이며 말했다.

“이 풀뿌리는 만병통치약이거든요.”

이반의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무척 신기해했다.

그 무렵, 이반이 사는 나라의 공주가 몹쓸 병에 걸렸다. 왕은 전국 방방곡곡에 공주의 병을 고쳐 주는 사람을 사위로 삼겠다는 방을 붙였다.

“얘야, 한 개 남은 풀뿌리를 가지고 궁궐로 가서 공주님의 병을 낫게 해 드리거라.”

부모님의 말을 듣고 이반은 길을 떠났다. 궁궐로 가는 도중에 이반은 손이 굽은 거지 여인을 만났다. 여인을 불쌍하게 여긴 이반은 한 개 남은 풀뿌리로 그 여인의 굽은 손을 낫게 해 주었다.

이제 만병통치약은 없었지만, 이반은 앓아누운 공주가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빈손으로 궁궐을 찾아갔는데, 그가 궁궐에 도착하자마자 공주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다.

이반은 왕의 사위가 되었고, 왕은 세상을 떠날 때 이반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이반네 세 형제는 모두 왕이 되었다.

맏형 세묜은 끊임없이 병사를 풀어서 백성을 괴롭히는 바람에 백성들은 점점 왕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둘째인 타라스는 돈밖에 모르는 왕이었다. 금고에 돈이 쌓여도 자꾸만 백성의 돈을 탐냈다. 하지만 이반은 왕이 되어서도 아무런 욕심이 없었다. 그저 변함없이 누더기를 입고 농사를 지었다.

“왕이 땅이나 파고 있다니! 우리가 이렇게 무능한 왕을 섬길 수는 없지 않은가.”

똑똑한 백성들은 모두 이반의 나라를 떠나고 말았다. 그래서 이반의 나라에는 평화롭게 농사를 지으며 사는 어수룩한 사람들만 남았다.

한편 부하들의 소식을 기다리다 지친 악마의 두목은 직접 이반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그가 찾아낸 것은 악마들이 사라지면서 남긴 구멍 세 개뿐이었다. 게다가 이반네 세 형제는 놀랍게도 모두 왕이 되어 있었다.

‘이런, 괘씸한 일이 있나! 내가 가만두지 않겠어.’

악마 두목은 장군으로 변장하여 세묜의 나라를 찾아갔다. 두목은 세묜에게 이웃 나라와 전쟁을 하도록 부추겼다. 악마의 꾐에 빠져 전쟁을 일삼던 세묜은 얼마 못 가 나라를 빼앗기고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다.

곧이어 악마 두목은 상인으로 변장하여 타라스의 나라로 갔다. 두목은 금화를 마음대로 만들어 타라스 나라의 물건을 비싼 값에 사들였다. 백성들이 돈을 많이 주는 악마에게 모든 물건을 파는 바람에 타라스는 돈이 있어도 물건을 살 수가 없었다. 마침내 먹을 것도 구하지 못하게 된 타라스는 나라를 잃고 이리저리 떠도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악마 두목은 마지막으로 이반의 나라에 갔다. 장군으로 변장한 두목은 이반에게 훌륭한 군대를 만들어야 한다며 힘주어 말했다.

이반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일을 두목에게 맡겼다. 그러나 그 나라에서는 병사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없었다.

생각 끝에 악마는 이웃 나라의 왕을 부추겨서 이반의 나라를 공격하게 했다.

그런데 이반과 그의 백성들은 전쟁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쳐들어온 이웃 나라 병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달라고 하지 어째서 전쟁을 합니까?”

“당신네 나라가 살기 힘들면 여기 와서 우리와 함께 삽시다.”

이웃 나라 병사들은 어이가 없어 의욕을 잃고 전쟁을 포기한 채 모두 돌아갔다.

다른 방법을 곰곰이 생각한 악마 두목은 멋진 신사로 변장하여 광장에 나갔다.

“나는 여러분에게 멋지게 사는 법을 가르쳐 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이 설계도대로 집을 지어 주십시오. 그 대가로 금화를 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 필요한 것은 스스로 만들거나 서로 나누어 쓰던 이반의 백성들은 돈이라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금화를 보고 신기하게 여겼다.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고 금화를 받았다. 그러나 금화를 아이들에게 장난감으로 나누어 준 후에는 더 이상 악마가 시키는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제 금화는 더 이상 필요 없어요. 장난감은 집에 많이 있으니까요.”

집은 채 절반도 짓지 못하고 중단되고 말았다. 게다가 이반의 나라에서는 금화를 가지고도 먹을 것을 살 수가 없었다. 악마는 너무나 배가 고팠다.

마침 궁궐에서는 이반의 여동생 말라냐가 사람들에게 따뜻한 점심을 대접하고 있었다. 말라냐는 사람들의 손을 일일이 만져 보고, 일을 많이 해서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인 사람만 식탁에 앉혔다. 손이 고운 사람은 게으름뱅이라고 여겨 먹다 남은 찌꺼기를 주었다. 배를 쫄쫄 굶은 악마가 식탁에 앉았다. 그러나 그의 손을 만져 본 말라냐는 얼굴을 찌푸렸다.

“게으름뱅이는 식탁에 앉히지 않는 것이 우리 아가씨의 규칙입니다. 기다렸다가 찌꺼기를 드세요.”

이반의 아내가 말했다.

“당신들은 손으로 일하는 것이 최고인 줄 알지만, 그건 아주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손보다는 머리를 써서 일하는 편이 지혜롭지요. 원하신다면 제가 방법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악마는 화가 나서 이반에게 소리쳤다. 이반은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백성들에게 악마 신사의 연설을 듣게 했다.

연단에 올라간 악마는 지혜에 대해서 연설을 했지만, 백성들은 악마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언제쯤 그가 손을 쓰지 않고 머리로 일을 할 것인지 기다리고 또 기다릴 뿐이었다.

마침내 피로와 굶주림에 지친 악마가 연설 도중 기둥에 머리를 부딪치고 쓰러졌다.

그것을 본 이반이 중얼거렸다.

“열심히 일하면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이듯, 머리를 쓰면 머리에 굳은살이 생기겠군.”

그 순간 악마가 땅속으로 자취를 감췄고, 그 자리에는 작은 구멍만 하나 남았다.

“앗! 이 녀석도 악마였단 말인가?”

이반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날 이후 이반의 곁을 떠났던 백성들은 다시 이반의 나라로 돌아왔다. 두 형도 이반을 찾아와 같이 살기를 청했다. 늘 바보 취급만 당했던 이반이 가장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그 나라에는 한 가지 규칙이 있었다. 손에 굳은살이 박인 사람은 식탁에 앉을 수 있지만, 굳은살이 없는 사람은 먹다 남긴 찌꺼기를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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