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동물의 말



주교관

멍청한 아들을 둔 늙고 돈 많은 백작이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어떻게 해서든 아들을 가르쳐 보려고 솜씨 좋다는 선생과 대학 교수를 줄줄이 초대했습니다.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알파벳은커녕 아라비아 숫자도 못 깨쳤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마지막 수단을 쓰기로 했습니다. 아예 세상에서 가장 현명하다는 학자의 집으로 아들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와 함께 1년 동안 먹고 자면 무언가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입니다.

첫 번째 1년이 지났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젊은이에게 아버지가 무엇을 배웠는지 물었습니다.

“개의 말을 배웠어요. 우아,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젊은이가 신이 나서 설명했지만, 아버지는 두 팔을 공중에 대고 허우적거릴 뿐이었습니다.

다른 학자와 두 번째 1년을 보내고 돌아온 젊은이가 새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며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아버지는 머리가 핑핑 돌아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습니다.

또 다른 학자와 세 번째 1년을 보내고 젊은이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마음을 비우고 있었지만, 여전히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무엇을 배웠느냐는 물음에 개구리의 말을 배웠다는 대답만 들었으니까요. 아버지가 문을 가리키며 하인들에게 소리쳤습니다.

“여봐라, 저 멍청한 놈을 당장 내쫓아라!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구나!”

집에서 쫓겨난 젊은이가 무거운 다리를 질질 끌며 한참을 걸었습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성문을 두드린 것은 해가 반쯤 기울어 버린 저녁나절이었습니다.

하룻밤 묵어가게 해 달라고 부탁하자,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영주가 힘없는 목소리를 짜냈습니다.

“성탑 방이라도 좋다면 그렇게 하시구려.”

횃불이 너울거리면서 젊은이의 얼굴이 환하게 드러났습니다. 영주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얼굴을 보아 하니 고생 모르고 자란 양반 같구먼. 이봐요, 그냥 돌아가시오. 성탑에는 들개의 무리가 나타난다오. 자칫 잘못했다가는 목숨을 내놓아야 할지도 모르지. 평화롭기 그지없는 마을이 그놈들 때문에 황량하게 변해 버렸소.”

젊은이가 눈을 크게 떴습니다.

“걱정 마세요. 먹을 것이나 좀 얻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튿날 아침 젊은이는 작은 생채기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으로 성탑에서 내려왔습니다.

“어젯밤 들개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래 전에 마술사가 그들을 들개의 모습으로 둔갑시키고, 성탑에 숨겨 놓은 보물 상자를 지키게 했다고 하더군요. 보물 상자를 꺼내 오는 사람이 그들을 저주에서 해방시킬 수 있답니다. 그래서 성탑을 뒤져 보물 상자를 찾아 놓았습니다.”

순순히 이런 이야기를 믿을 사람은 드물겠지요. 영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영주가 와들와들 몸을 떨며 젊은이를 따라 계단을 올랐습니다. 이럴 수가, 성탑 방 한가운데 큼지막한 보물 상자가 놓여 있습니다! 영주가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젊은이를 와락 껴안았습니다.

“이 보물 상자의 주인은 그대일세. 원한다면 내 사위가 되어 주었으면 하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여보게, 자네가 우리 마을을 저주에서 구해 냈어!”

젊은이는 성에 며칠 더 머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영주의 딸도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하지만 당장은 결혼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세상을 좀 더 구경하면서 자신의 특별한 재능을 시험해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는 영주와 딸에게 손을 흔들며 성을 떠났습니다. 넓디넓은 늪지대를 지나는데 개구리 노랫소리가 요란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는 로마라네. 로마에는 교황님이 사신다네.”

‘그래! 그렇다면 안 가 볼 수 없지.’

젊은이는 마차를 타고 로마로 향했습니다.

로마는 한마디로 기적 그 자체였습니다. 궁전, 광장, 조각상, 성당, 분수, 거리……, 모든 것이 가슴을 쿵쿵 뛰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젊은이가 느낀 감격과 달리 도시는 슬픔에 가득 잠겨 있었습니다. 도시 곳곳에 나부끼는 검정 깃발이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으뜸인 교황의 죽음을 알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젊은이는 추기경들이 모여 새 교황을 선출하는 베드로 대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교황 선출은 쉽지 않았습니다. 어떤 추기경은 갑을, 어떤 추기경은 을을, 또 어떤 추기경은 병을 지지했습니다. 선거가 차례를 더해 가자 멱씨름하는 이들까지 생겨났습니다. 마침내 추기경들은 하느님의 뜻에 따르자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 순간 젊은이가 양쪽 어깨에 흰 비둘기를 앉힌 채 베드로 대성당에 들어섰습니다.

“저분이시다! 저분이야말로 새 교황님이시다!”

추기경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들이 젊은이를 네 기둥이 받치고 있는 대성당 중앙의 닫집 아래로 안내했습니다.

젊은이가 놀라 파랗게 질린 얼굴로 비둘기에게 물었습니다.

“나보고 어쩌란 말이야?”

비둘기가 귀에 부리를 대고 속삭였습니다.

“교황이 되셔야 해요.”

이렇게 해서 젊은이는 교황으로 추대되었습니다. 그 후 첫 번째로 집전한 미사 때에는 비둘기가 해야 할 말을 한 마디 한 마디씩 일러 주었습니다.

이로써 바보 멍청이라며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자식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