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새와 곰



굴뚝새

하루는 곰과 늑대가 숲 속을 거닐었습니다. 늑대가 보란 듯이 아는 척을 늘어놓는데 느닷없이 아름다운 새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곰이 누구의 노랫소리냐고 물었습니다.

늑대가 못 믿겠다는 것처럼 눈알을 떼구루루 굴렸습니다.

“정말 몰라요? 저건 새들의 임금님 목소리랍니다. 새들의 임금님을 만나면 누구든지 깊이 허리 숙여 인사를 드리지요.”

“오호, 그래요. 그분의 왕궁에 가 보고 싶군요. 안내해 주시겠어요?”

곰이 바싹 다가서며 물었습니다.

“물론이지요. 하지만 왕비님께서 돌아오실 때를 기다려야 해요.”

얼마 후 임금 부부가 입 안 가득 먹이를 물고 등장했습니다. 굴뚝새 한 쌍이었지요.

곰이 어서 왕궁으로 쫓아가 인사를 드려야 한다며 고집을 부렸습니다.

거짓말이 들통 날까 두려워하며 늑대가 소리쳤습니다.

“이봐요, 임금님이 당신을 만나 줄 만큼 한가한 줄 알아요. 게다가 지금은 왕자님과 공주님들에게 밥을 먹일 시간이에요.”

“왕궁이라도 좀 보여 주세요.”

곰이 우는 목소리로 사정했지만, 그런다고 없던 왕궁이 생겨날 리 없었습니다. 늑대가 또 없는 말을 꾸며 냈습니다.

“자꾸 떼쓰지 마요. 임금님과 왕비님이 날아갈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나 원 참, 그러려면 한참 걸리는데……. 이봐요, 나는 급한 볼일이 있어 이만 가 봐야겠어요.”

늑대가 이 말을 남기고 나무 그림자 사이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곰은 덩그맣게 혼자 남아 끈기 있게 새들이 떠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기다린 보람이 찾아왔습니다. 굴뚝새 부부가 떠났습니다. 곰이 그들이 날아오른 수풀 속으로 커다란 머리를 쑥 들이밀었습니다. 왕궁을 보고픈 마음이 간절했으니까요. 아, 곰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왕궁이 아니라 볼품없이 작은 둥지요, 왕자와 공주들이 아니라 배가 고파 버둥대는 네 마리 새끼였습니다. 새끼들이 곰을 보고 정신없이 짹짹 울었습니다. 곰이 털이 북슬북슬한 앞발로 귀를 막고 투덜거렸습니다.

“왕궁이라고! 왕자님과 공주님들이라고! 웃기고 있네! 너저분한 둥지에다가 우습게 생긴 새끼들이라니!”

이 소리를 듣고 새끼들이 빽빽 소리를 질렀습니다.

“뭐라고 너저분한 둥지에 우습게 생긴 새끼들이라고! 야, 이 뚱뚱보 돼지야! 우리 부모님은 점잖고 교양이 넘치는 분들이야. 그분들께서 돌아오셔서 너를 혼내 줄 거야!”

곰은 시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제 굴로 도망쳤습니다.

새끼들의 아우성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새끼들에게 자세한 설명을 들은 아비굴뚝새가 성난 소리로 말했습니다.

“따끔하게 혼을 내주어야지 그냥 넘어갈 수 없구나.”

아비굴뚝새는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곰의 굴로 날아와 소리쳤습니다.

“야, 이 미련한 곰아! 감히 어찌 그리 무례하단 말이냐? 내 너에게 전쟁을 선포하겠다!”

그리하여 네 발 달린 동물들과 온갖 새들은 물론, 모기・파리・말벌・호박벌・풍뎅이 따위 온갖 곤충들 사이에 큰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아비굴뚝새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모기를 곰의 진영으로 보냈습니다.

한편 새들의 움직임을 살피던 곰도 싸움 준비에 한창이었습니다. 곰이 고추처럼 빨간 여우를 공격 대장에 임명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곰 총사령관님!”

여우가 곰에게 인사하고 다른 동물들을 둘러보았습니다.

“내가 빨간 꼬리를 번쩍 들어 올리면 공격하라는 신호입니다. 특히 꼬리 끝을 왼쪽으로 돌리면 왼쪽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오른쪽을 공격하라는 뜻입니다. 일단 싸움터에 나가면 후퇴할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만약 그럴 일이 생기면 꼬리를 내리겠어요.”

“모두들 마음속 깊이 새겨 두었으리라 믿겠다.”

곰이 엄한 목소리로 거들며 염소에게 전투 준비를 알리라고 명령했습니다.

모기가 돌아와 이 사실을 알리자, 아비굴뚝새가 호박벌을 불렀습니다. 그들이 왱왱 소리를 지르며 모여들었습니다.

“우리는 적이 미처 대비하기 전에 공격을 퍼부어 승리를 낚아챌 것이오. 여러분은 적의 공격 대장인 여우의 꼬리에 사정없이 침을 쏘아 주시오.”

호박벌 무리가 경례를 올리고 줄지어 날아갔습니다.

동물들이 벌써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썰물처럼 밀려오는 동물들 맨 앞에 꼬리를 바싹 세운 여우가 보였습니다. 호박벌들이 여우 꼬리를 향해 내리꽂혔습니다. 한 방, 또 한 방, 또 한 방! 여우 꼬리에서 불이 났습니다. 여우는 두 다리 사이에 꼬리를 말아 넣고, 동물들 무리에서 뒤로 빠져 근처 시냇물로 뛰어들었습니다.

다른 동물들이 그 모습을 보고 허둥댔습니다. 당연히 후퇴하는 줄 알았습니다. 너나없이 걸음아 날 살리라고 달아나기 바빴습니다. 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렇게 전쟁은 싱겁게 끝이 났지만, 이것이 이야기의 끝은 아닙니다. 여우가 시냇물에 꼬리를 담그고서 화끈거리는 상처를 식히는 동안에 아비굴뚝새가 곰의 굴로 날아가 소리쳤습니다.

“네 병사들에게는 자비를 베풀었지만, 너는 다르다. 내 자식을 우습게 생긴 새끼들이라 부른 죄는 도무지 용서할 수가 없다. 당장 그들에게 가 사과해라. 안 그러면 갈비뼈를 부러뜨려 줄 테다!”

곰은 그 말에 고분고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겁에 질려 덜덜 떨며 굴뚝새 둥지로 갔습니다.

“진심으로 사과할 테니 용서해 주렴. 너희는 우습게 생긴 새끼들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임금님의 자제 분들이야.”

새끼굴뚝새들이 신이 나서 숲이 떠나갈 듯 소리쳤습니다.

“용서할게요, 곰 아저씨! 그만 돌아가 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