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마리 갈까마귀



갈까마귀

아들만 일곱인 사내는 머지않아 태어날 막내가 딸이기만을 바랐습니다. 하늘이 도왔는지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어느 맑은 겨울날 아내가 딸아이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기쁨을 느끼기도 전에 슬픔이 몰아쳤습니다. 아기의 건강이 몹시 나빴던 것입니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할딱이는 아기를 안고 교회로 달려갈 수는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사제가 허겁지겁 달려왔습니다.

사내가 세례식에 쓸 물을 받아 오라며 아들 하나를 우물로 보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쭐레쭐레 뒤를 따라나섰습니다. 철없는 아이들은 서로 자신이 물을 긷겠다고 실랑이를 벌이다 물 항아리를 우물에 빠뜨렸습니다.

아이들이 덜컥 겁에 질려 집에 돌아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이 사내는 조바심이 나서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물 길어 오라 했더니 어디 가서 놀고 있나 보구먼. 이런 괘씸한 녀석들 같으니라고.”

시간이 더 지나갔습니다. 이러다 아기는 세례도 받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내가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요놈들, 차라리 갈까마귀나 되어 버려라!”

말을 내뱉자마자 새들이 날개를 푸드덕거리는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문득 고개를 들어 창밖을 올려다보는데 석탄처럼 새까만 갈까마귀 일곱 마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이쿠!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저주가 현실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내가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갈까마귀를 쫓다가 차가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땅을 쳤습니다. 손바닥으로 공연한 저주를 퍼부은 입을 탁탁 때렸습니다.

하루하루가 악몽의 연속이었습니다. 다만 외동딸 에마가 무럭무럭 자라 준 것이 유일한 위안이 되어 주었습니다.

사내는 에마가 슬퍼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우물가에서 있었던 일은 절대 입에 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비밀은 없나 봅니다. 이웃 아낙들이 이러쿵저러쿵 수다 떠는 것을 우연히 엿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에마는 예쁜 아이지만, 사실 저 아이는 제 오빠들을 불행에 빠뜨렸어요.” 대충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에마가 하얗게 질려 집으로 달려와 캐물었습니다. 사내가 그 일은 에마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입이 닳도록 강조했지만, 에마는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이후 에마는 어깨를 짓누르는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마침내 오빠들을 구해 내겠다고 결심한 에마가 집을 떠났습니다. 부모님의 반지가 에마가 가진 전부였습니다.

에마는 용감한 모험을 계속했습니다. 지구 반대편 끝에도 오빠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음에는 태양의 나라로 향했습니다. 온몸이 촛농처럼 흘러내릴 것만 같은 뜨거움을 견디며 구석구석을 뒤졌지만 헛수고였습니다. 에마는 태양의 나라를 뒤로 하고, 달님의 나라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달님의 나라는 태양의 나라와 달리 얼음처럼 차가웠습니다. 이번에는 동태처럼 딱딱하게 굳어 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달님의 나라에서 조사를 마친 에마는 서둘러 별님의 나라로 떠났습니다.

별님의 나라는 덥지도 춥지도 않았습니다. 별들이 은빛 안락의자에 앉아 벽난로처럼 포근한 빛을 뿌려 주었습니다.

“별들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해요, 에마!”

누군가 친절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습니다. 가까운 안락의자에 앉아 있던 샛별이었습니다.

“이걸 가져가세요. 당신 오빠들이 살고 있는 유리 언덕에 들어가려면 이것이 있어야 해요.”

샛별이 에마를 손짓해 부르며 작은 막대기를 내밀었습니다.

“은하수를 따라가면 금방 유리 언덕이에요.”

샛별이 용기를 북돋워 주었습니다.

강물을 타고 흐르듯 은하수를 따라 계속 날아갈 때는 별들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영롱한 빛을 뿜어 주었습니다. 샛별이 일러 준 대로 유리 언덕은 그다지 멀지 않았습니다.

작은 막대기로 문을 열고 유리 언덕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난데없이 난쟁이가 나타나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금빛이 섞인 은빛 털, 고불고불하게 말린 보랏빛 수염, 불붙은 석탄처럼 이글거리는 붉은 눈동자가 물었습니다.

“어쩐 일이오?”

“갈까마귀로 둔갑한 오빠들을 찾고 있어요.”

에마가 대답하자, 난쟁이가 표정을 누그러뜨리며 유리방으로 안내했습니다. 조금 있으면 오빠들이 돌아올 것이라는 말에 에마가 얼마나 행복했는지요! 일곱 개의 작은 접시와 일곱 개의 작은 컵에 오빠들을 위한 음식과 음료수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오랜 여행을 한 뒤라 에마는 몹시 배가 고프고 목이 말랐습니다. 음식과 음료수를 조금씩 먹다가 마지막 컵에 반지를 빠뜨렸습니다.

미처 반지를 꺼내지 못했는데 날갯소리가 공기를 갈랐습니다. 에마가 재빨리 문 뒤로 몸을 숨기자마자 일곱 마리 갈까마귀가 유리방으로 날아들었습니다. 갈까마귀들이 식탁에 앉아 접시와 컵을 내려다보며 사람의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누가 내 걸 먹었지?”

“누가 내 걸 마셨을까?”

막내 갈까마귀가 부리로 반지를 끄집어냈습니다.

“이게 뭐야? 아니, 이건 우리 부모님 반지가 틀림없어. 여동생이 우리를 구하러 왔나 봐.”

에마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갈까마귀 깃털이 공중에 흩날리며 오빠들이 사람의 모습을 되찾았던 것입니다. 오누이들은 정겹게 입을 맞추고 두 번 다시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서로를 꼭 끌어안았습니다.

그 후 오누이는 고향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과 함께 오래오래 살았답니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말이 씨가 된다.”는 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