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장이와 꼬마 요정



요정

일이라는 게 잘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돈벌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이 잘 벌릴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구두장이는 영 살맛이 나지 않습니다. 문턱이 닳도록 뻔질나게 드나들던 손님이 뚝 끊어지고, 파리만 날렸던 것입니다. 손님이 구두를 사야 그 돈으로 가죽을 사들일 텐데, 손님이 없으니 돈이 없고, 결국 가죽마저 떨어져 겨우 구두 한 켤레 만들까 말까 한 분량이 남았을 뿐입니다.

저녁 늦게 구두장이가 마지막 남은 가죽을 마름질했습니다.

‘아, 졸려! 내일 아침에 일꾼들이 일할 때 신을 신발이나 만들어야겠군,’

이튿날 아침 일찍 졸린 눈을 비비며 작업실에 들어선 구두장이가 신음 소리를 냈습니다. 세상에, 구두가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더구나 새 구두는 구두장이가 디자인한 것과 달리 화려한 무도회용 구두였을 뿐만 아니라, 가죽도 어제 마름질해 두었던 것과 달리 최고급 송아지 가죽이었습니다.

첫 손님이 구두의 임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선뜻 지갑을 열었습니다. 구두장이는 이 돈으로 두 켤레를 만들 수 있을 만큼 가죽을 사고, 장도 보았습니다.

오랜만에 푸짐한 저녁을 먹고, 구두장이는 작업실의 불을 켰습니다. 어제처럼 마름질을 해 구두를 만들 준비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웠습니다. 마무리는 내일 하겠다고 아내에게 말은 해 놓았지만, 내심 밤 동안 기적이 다시 일어나지는 않을까 기대가 가득했습니다.

아침이 밝았습니다. 우아, 무도회용 구두 두 켤레가 작업대 위에서 빛났습니다. 솜씨 좋은 구두장이의 가슴을 설레게 할 만큼 멋진 구두였습니다. 이 구두도 진열대에 전시해 놓자마자 팔려 나갔습니다. 구두장이는 그 돈으로 구두 네 켤레를 만들 가죽과 먹을 것을 구입했습니다.

기적은 계속되었습니다. 마침내 구두장이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자기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있던 구두장이의 입술이 근질근질했나 봅니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았습니다.

“누가 우리를 도와주었을까요? 혹시 악마가 우리를 잡아가기 위해 덫을 놓은 것은 아닐까요? 그렇지는 않겠지만……. 아,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서 안 되겠어요. 오늘 밤에 자지 말고 누구 짓인지 확인하도록 해요. 알았지요? 작업실에 촛불을 하나 켜 놓고, 옷장 속에 몰래 숨어 기다리자고요.”

구두장이가 평소처럼 다음 날 만들 구두 재료를 말랐습니다. 물론 한두 켤레가 아니니, 그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남은 일은 아내와 옷장 속에 숨어 기다리면 되었습니다.

갑자기 사방에서 구슬이 마룻바닥을 구를 때처럼 다르륵 소리가 났습니다. 발가벗은 꼬마 요정 둘이 작업대 위로 뛰어올랐습니다. 이윽고 작은 손가락들이 번개처럼 잽싸게 움직이면서 바느질을 하고, 풀칠을 했습니다. 그들은 준비된 재료가 남김없이 구두로 완성될 때까지 잠시도 쉬지 않았습니다. 작업대 위에 색상과 크기가 각각 다른 열 켤레 구두가 가지런히 놓였습니다. 마치 주문에 따라 제작한 것처럼 말입니다. 구두장이와 아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구두를 감상하는 사이 꼬마 요정들은 포르르 사라져 버렸습니다.

구두장이와 아내가 옷장에서 나와 서로 어깨를 감싸 안았습니다.

아내가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여보, 꼬마 요정들이 감기에 걸리면 어떡해요? 우리를 이렇게 열심히 도와주는데, 우리도 그들을 위해 할 일이 있을 것 같아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제가 예쁜 바지랑 셔츠랑 외투랑 모자랑 양말을 만들 테니까, 당신은 발이 편안하고 따뜻한 구두를 만드세요. 꼬마 요정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자고요.”

구두장이가 찬성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두 손 들어 환영했지요. 그리하여 아침 일찍 시작한 선물 만들기는 저녁녘이 되어서야 끝이 났습니다.

구두장이와 아내가 작업대에 옷가지며 구두를 올려놓고 옷장에 몸을 숨겼습니다. 꼬마 요정이 선물을 좋아할까 어떨까 마음 졸이며 기다리는 시간은 1초가 한 시간같이 길기만 했습니다. 벽시계가 자정을 알리자마자 구슬 굴러 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꼬마 요정들이 작업대에 뛰어올랐습니다. 구두 재료 대신 자신들을 위한 선물이 정성껏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어리둥절한 눈으로 선물만 바라보던 꼬마 요정들이 탄성을 질렀습니다. 옷과 구두를 신은 꼬마 요정들은 춤추고 노래하며 문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 뒤로 구두장이와 아내는 두 번 다시 꼬마 요정들을 만날 수 없었답니다. 그렇다고 구둣방에 또다시 가난의 먹구름이 드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부부가 부지런히 일하는 만큼 행운도 따라 주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