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와 고양이



고양이

언제부터인지 여우가 자루를 질질 끌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호기심에 가득한 눈빛으로 동물들이 물어 오면, 여우는 참견 말라며 버럭 성질을 냈습니다.

여우가 산책을 나갔던 길에 고양이 아가씨를 만났습니다. 고양이 아가씨가 얌전하게 인사하며 안부를 물었습니다. 어느 누가 웃는 얼굴에 침을 뱉겠습니까? 그러나 콧대 높은 여우가 무례하게 굴었습니다.

“이런 칠칠치 못하게 꼬리나 질질 끌고 다니는 천한 쥐잡이가 감히 내 앞을 막아서서 안부를 물어. 좋다, 이왕에 이렇게 만난 김에 네 재주가 무언지 들어나 보자. 그래, 재주를 몇 가지나 부릴 수 있는고?”

“아쉽지만 한 가지 재주밖에 없습니다. 개가 추격해 오면, 나무 위로 뛰어올라 목숨을 구하는 재주지요.”

고양이 아가씨가 겸손하게 대답했습니다.

“그게 다라고? 이 자루 속에는 말이다, 추격자를 따돌릴 방법만 해도 천 가지나 있지.”

여우가 비웃었습니다.

갑자기 컹컹 개 짖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냥개 네 마리가 맹렬히 돌격해 왔습니다. 고양이 아가씨가 잽싸게 나무 위로 뛰어올라, 엉거주춤 갈피를 잡지 못하는 여우에게 소리쳤습니다.

“여우님, 자루를 여세요! 자루를요!”

자루요? 글쎄요. 그것은 개뿔도 아니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괜히 폼만 잡은 거라고요.

여우의 최후에 대해서는 목격자들에 따라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는 개들이 와락 달려들어 숨통을 끊어 놓았다고 합니다. 둘째는 여우가 꽁지 빠지게 달아나고, 개들이 죽어라 뒤쫓아 갔다고 전합니다. 결말이야 어떻든 두 경우 모두 자루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한편 나무 위로 달아났던 고양이 아가씨가 고개를 설레설레 내두르며 중얼거렸습니다.

“재주가 그득하다던 자루가 말썽을 피웠나 보구나. 치, 그냥 이 위로 기어올라 왔으면 될 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