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속의 요정



병

가난한 나무꾼이 한 푼 두 푼 부지런히 모아 마침내 아들을 나라에서 최고라고 소문난 일류 대학에 보냈습니다.

아들은 대학에서 과학과 예술의 전 분야를 두루 연구했습니다. 그런데 대학 공부에는 돈이 많이 듭니다. 나무꾼이 평생 모은 돈은 오래지 않아 바닥이 나 버리고, 아들은 별수 없이 고향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나무꾼은 미안해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이젠 몸이 예전과 달라 겨우 엄마와 둘이 먹고살 정도밖에 나무를 할 수 없구나.”

아들이 환한 미소로 아버지를 위로했습니다.

“걱정 마세요. 제가 아버지를 도와 열심히 일하면 학비를 벌 수 있을 거예요.”

나무꾼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둘렀습니다.

“얘야, 이런 일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더구나 도끼라곤 달랑 하나밖에 없는걸.”

“옆집 어른에게 빌려 달라고 부탁하면 되잖아요. 나무를 팔아 새 도끼를 사서 돌려 드리면 되고요.”

아들이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싫은 표정으로 입맛을 쩝쩝 다셨지만, 사실은 아들이 대견해 콧노래라도 부르고 싶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나무꾼과 아들이 숲으로 가 나무를 했습니다. 나무꾼은 아들의 일솜씨에 입이 쩍 벌어졌습니다. 굵은 나무를 척척 베어 내는 통에 수레에 실어 담기가 바쁠 지경이었습니다.

“시장하지 않니? 점심을 먹으면서 잠시 쉬었다 하자.”

나무꾼이 아들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습니다.

오전 내내 땀으로 미역을 감을 만큼 일했는데 배가 고프지 않을 리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들은 밥 먹을 생각은 안 하고 이 나무 저 나무로 돌아다니며 새 둥지를 올려다볼 뿐이었습니다.

어서 밥 먹으라고 재촉하는 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는 듯 아들은 어느새 숲 그림자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버지가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쳤습니다.

“영락없는 학생이로구나, 허허허!”

나무꾼 다섯 사람이 겨우 안을 수 있을 만큼 우람한 참나무가 자석처럼 아들을 끌어당겼습니다.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어찌나 무성한지 그 아래는 마치 동굴인 양 어두컴컴했습니다.

‘이런 나무라면 새 둥지도 많겠지?’

기대에 가득해 나무 둘레를 몇 바퀴 돌았지만, 새 둥지는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날벌레가 잉잉거리듯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살려 주세요! 나 좀 살려 줘요!”

아들이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방을 두리번거렸습니다. 간절히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습니다.

“나무뿌리 사이예요!”

혹이 울퉁불퉁한 뿌리 사이에서 비죽 내민 유리병 아가리가 보였습니다. 조심스레 흙을 파내고 유리병을 꺼내 햇빛에 비추어 보았습니다. 병 안에 개구리 비슷한 것이 요란스러운데 투명하고 신비한 빛을 번쩍번쩍 내뿜었습니다.

“살려 주세요! 나 좀 살려 줘요!”

마음씨 착한 아들이 나 몰라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코르크 마개를 뽑았습니다. 다음 순간 그는 엉덩방아를 쿵 찧으며 무너지듯 주저앉았습니다. 병 속에서 먼지 같기도 하고 증기 같기도 한 것이 한줄기 솟아올라 안개처럼 구름처럼 퍼져 나가다 집채만 한 요정으로 변신했던 것입니다.

요정이 사나운 눈을 부라리며 천둥처럼 큰 소리를 내질렀습니다.

“하찮은 인간 나부랭이에게 도움을 받을 때도 있다니, 어쨌든 고맙구나! 네게 줄 감사의 선물이 무엇인 줄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느냐?”

달팽이가 껍데기에 몸을 숨기듯 잔뜩 움츠린 아들이 부들부들 온몸을 떨었습니다. 요정이 껄껄 웃으며 놀렸습니다. 퉁방울눈이 금세라도 머리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무서워 죽겠지? 히히, 나는 네놈의 목을 두 손가락으로 잡아 살짝 눌러 죽여 버릴 거야. 어때, 파리 한 마리 죽이는 것보다 쉽다고 생각하지 않나? 이봐, 잘 들어 두라고. 나는 위대한 요정 메르쿠리우스다.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세월 저 병 속에 갇혀 있었도다. 하지만 오늘 네놈에게 대신 복수할 테다!”

요정이 기뻐 미치겠다는 표정이 되어 염소처럼 폴짝폴짝 뜀박질을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주인공이 이쯤에서 무릎을 꿇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어린이는 없을 것입니다. 어느덧 공포심을 누르고 용기를 되찾은 아들이 요정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어이쿠, 이럴 수가? 당신이 정말 메르쿠리우스님이라고요? 하느님처럼 전지전능한 메르쿠리우스님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아주 작은 의심이 드는군요. 당신이 정말로 위대한 분이라면 저처럼 하찮은 학생을 놀림감으로 삼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참, 또 하나! 진짜 메르쿠리우스님이라면 저 작은 병 안으로 다시 들어갈 수도 있을 텐데. 그 모습을 본다면 두 번 다시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어라, 감히 나를 의심해! 자, 똑바로 보라고!”

요정이 차츰 작아져 한줄기 먼지나 증기같이 되더니, 빙빙 소용돌이치며 병 속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아들이 잽싸게 마개로 아가리를 막았습니다.

“이야, 대단한걸. 하지만 정말로 재주가 용하다면 병 속에서 이리 나와 보렴. 안 그랬다간 허풍선이라고 놀려 줄 테야.”

병 속에서 투명하고 흐릿하며 개구리 비슷한 것이 투덜거렸습니다.

“이봐, 젊은이! 큰 상을 내릴 테니까 나를 다시 꺼내 주게나.”

아들이 쩌렁쩌렁 호통을 치며 땅을 팠습니다.

“천만에 말씀! 너를 나무뿌리 사이에 다시 묻어 둘 거야.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게 아주 깊숙이 말이다!”

요정이 연거푸 허리를 굽실대며 우는 소리로 간청했습니다. 아버지에게 불쌍한 이들에게 동정심을 베풀라고 배워 온 아들의 마음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그는 땅파기를 멈추고, 마개를 열어 요정을 다시 풀어 주었습니다.

요정이 슬금슬금 병에서 미끄러져 나와 아까처럼 거인이 되었습니다. 그가 겸손한 말투로 인사를 건넸습니다.

“지옥 같은 감옥에서 해방시켜 주어 정말 감사합니다.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선물을 드리고 싶군요.”

요정이 긴 팔을 뻗어 천 조각을 건넸습니다.

“이것은 마법의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쪽 끝은 어떤 상처라도 치료해 주고, 다른 쪽 끝은 쇠붙이를 은으로 바꾸어 버린답니다.”

아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천 조각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문득 천 살도 더 먹어 보이는 참나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오랜 세월 비바람에 시달린 증거인 양 나무줄기 곳곳이 말라비틀어지고 썩어 들어가면서 껍질이 자꾸만 벗겨지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천 조각 한쪽을 참나무에 갖다 댔습니다. 세상에, 나무줄기에 물기가 파랗게 오르면서 여기저기서 새순이 돋아 올랐습니다!

“작은 병 속에 숨는 재주 말고도 신기한 능력이 많은 것 같구나.”

아들이 치켜세우자, 요정은 불덩이 같은 눈망울을 굴리며 아이처럼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병에 갇혔던 기억이 되살아났는지 황급히 작별 인사를 건네고 공기 중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자 안심한 듯 숨을 내쉬었습니다.

“무얼 하느라 이제야 오느냐? 어서 점심을 먹거라.”

“좀 있다 먹을게요. 이것 좀 보세요. 제가 여기 있는 가문비나무를 도끼질 한 번에 쓰러뜨릴 게요.”

아들은 마법의 천 조각을 이용해 도끼를 은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런 다음 있는 힘껏 나무 밑동에 도끼를 내리찍었습니다. 은 도끼가 멀쩡할 리 없었습니다. 잘게 부서져 사방으로 흩어져 버리고, 도끼 손잡이만 손에 들려 있을 뿐입니다.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아버지가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이거 큰일 났구나! 무슨 돈이 있어 도끼 값을 물어준단 말이냐! 우선 부서진 조각이라도 주워 모아라. 그것이라도 장에 내다 팔아야 하지 않겠니. 그런 다음 모자라는 돈은 어떻게든 마련해 보자꾸나.”

아들은 땅바닥을 네 발로 기어 다니며 은 조각을 주워 모았습니다. 속이 상한 아버지는 입을 꾹 닫아 버린 채 나무를 벨 생각을 잊었습니다. 결국 아버지와 아들은 일을 접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들이 읍내에 나가 대장장이에게 은 조각을 팔아 왔습니다. 무려 은화 300냥이었습니다.

이처럼 많은 돈을 난생 처음 보는 나무꾼 부부는 싱글벙글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랐습니다. 아들이 환하게 웃으며 물었습니다.

“도끼 값으로 얼마나 쳐주면 될까요?”

“새것이라면 은화 한 냥 반 정도 되겠지.”

“그럼 두 배로 쳐서 석 냥을 드리자고요.”

시원시원한 대답을 듣는 아버지는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은근한 걱정을 감출 수는 없었습니다.

“얘야, 그나저나 이 많은 돈을 어디에서 구했니?”

그제야 아들은 숲 속에서 요정을 구해 준 일이며, 은으로 변한 도끼 조각을 시장에 내다 판 일을 빠짐없이 들려주었습니다.

그 후 아들은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없이 대학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못 고칠 병이 없는 아들은 공부를 마치고 용한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온 세상의 황제와 임금, 공주와 왕자가 한 번만이라도 만나 보기를 간절히 희망하는 유명 인사로 이름을 날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