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똑똑한 엘지



도끼

어느 마을에 혼기가 꽉 찬 노처녀 딸을 둔 농부가 살았습니다. 그녀, 즉 엘지는 이를테면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었습니다. 세상에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임금님이 저녁에 무엇을 먹었는지도 알 수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녀에게 사물을 꿰뚫어 보는 신통력이 있다고 수군대곤 했습니다. 게다가 농부는 엘지에게 물려줄 너른 땅을 소유한 큰 부자였습니다. 이쯤 되면 마을 총각들이 앞다투어 결혼을 조를 만도 한데 사정은 그와 달랐습니다. 총각들은 엘지네보다 가난한 집 처녀들 꽁무니를 쫓아다니면 쫓아다녔지 엘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왜냐고요? 아뿔싸! 엘지는 못난이 박색이었던 것입니다.

너무 안타까워 마세요. 짚신도 짝이 있다고 하니까요.

어느 날인가 한스가 꽃다발을 가슴에 안고 엘지네 집을 찾았습니다. 한스는 어딘지 모자란 구석이 있는 총각이었습니다. 맞선을 보는 족족 번번이 퇴짜를 맞았기 때문에 기가 꺾여 죽어지내고 있었지요. 이 모습을 보고 마음 아파하던 어머니가 엘지를 배필로 맞이하자는 의견을 냈던 것입니다.

“얘야, 몽달귀신이 되기보다는 못난이 색시라도 얻는 게 낫지 않겠니? 그러니까 엘지네 집에 가서 결혼을 청해 보아라. 아마 얼씨구나 하고 받아들일게다. 다만 멍청하기까지 하면 곤란하니까 똑똑하다는 소문이 사실인지 꼭 확인해야 한다.”

엘지의 부모도 한스의 한심한 처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지런한 일꾼이며, 믿음직한 젊은이라는 사실 또한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환한 웃음으로 한스를 맞으며, 엘지가 얼마나 똑똑한지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엘지는 10년 앞을 내다보는 신통력을 지녔다네. 날씨의 변화를 어찌나 정확하게 알아맞히는지 그 아이가 심으라는 작물을 심었다가 손해를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농부가 운을 떼자, 아내가 거들었습니다.

“엘지보다 똑똑한 처녀는 없을걸. 얼마 전에만 해도 이런 일이 있었어. 몇 해 전에 우유 통을 쓰러뜨린 적이 있는 장난꾸러기 수고양이에게 똑같은 실수를 하지 말라며 단단히 야단을 치더라고!”

네 사람은 식탁에 둘러앉아 흥겹게 식사를 했습니다. 아내가 엘지에게 지하실에 내려가 맥주를 가져오라고 심부름을 보냈습니다.

맥주 통 꼭지에서 맥주가 잴잴 흘러나왔습니다. 엘지는 술 단지가 차오르기를 기다리는 것이 지루하여 벽과 천장을 휘휘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아차! 깜짝 놀란 엘지가 돌부처처럼 굳어 버렸습니다. 머리 위 천장을 가로지른 대들보에 누군가 찍어 놓고 잊어버린 도끼가 박혀 있었던 것입니다.

엘지가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애고, 한스와 결혼하고 아기가 태어났어. 아이가 자라 심부름할 만한 나이가 되어 맥주를 가져오라고 이곳에 보냈어. 그런데 저놈의 도끼가 떨어져 아이가 죽으면 어쩌지? 어머나 큰일 났네!”

엘지가 어깨를 들썩이며 구슬피 우는 동안에 맥주는 단지에서 넘쳐흘러 지하실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습니다.

농부와 아내는 엘지가 돌아오지 않자, 하녀를 지하실로 보냈습니다. 아이코! 엘지가 속이 상해 우는 사정을 전해 들은 하녀 또한 덩달아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서럽게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시원한 맥주가 도착할 때만을 기다리고 있자니까 목이 더욱 말랐습니다. 농부는 하인을 지하실로 보냈습니다. 사나운 동물이나 못된 악마가 있을지도 모르므로, 이런 경우에는 나이 많은 농부보다 젊은 하인이 적격이라고 생각했지요.

물론 지하실에는 사나운 동물이나 못된 악마가 있을 리 없었습니다. 하인이 애처롭게 울고 있는 두 여인에게 물었습니다.

“도살장에 끌려온 돼지처럼 울고 있는 까닭이 대체 뭐예요?”

엘지가 간신히 말을 꺼냈습니다.

“대들보에 박힌 도끼 좀 봐. 내가 한스 씨와 결혼해 아이를 낳아 몇 해를 정성껏 키웠는데, 그 아이를 이곳에 보내 맥주를 가져오라고 심부름을 보냈다고 생각해 보라고. 그때 저놈의 도끼가 떨어져 아이를 죽이면 어떡하지? 아, 그러니 어찌 슬프지 않을 수가 있겠어!”

하인이 발을 구르며 함께 울었습니다. 울음소리가 어찌나 큰지 식탁에서도 충분히 들을 수 있었지요. 아내가 파랗게 질려 헐레벌떡 지하실로 달려갔고, 다음은 농부 차례였습니다. 결과는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내도 농부도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통곡을 터뜨릴 뿐이었지요.

마침내 한스가 지하실로 내려왔습니다. 한스는 울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까닭을 알고 난 뒤 존경에 가득한 눈빛으로 엘지에게 청혼했습니다.

“우리는 천생연분이에요. 당신보다 현명한 사람은 없을 거예요. 저와 결혼해 주세요.”

그들은 맥주에 신발이 젖는 줄도 모르는 채 신이 나서 결혼식 계획에 열중했습니다.

시골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식대로 결혼 준비가 착착 진행되었습니다. 한스와 엘지의 결혼에 이의가 있는 사람이 있는지 묻는 결혼 공고문이 교회에 나붙고, 신랑의 친구들이 신랑을 위해 베풀어 주는 총각 파티가 열리고, 신부의 친구들이 신부에게 선물을 주는 축하 잔치가 치러진 다음 마침내 둘의 결혼식이 교회에서 거행되고, 성대한 결혼 잔치가 농부의 농장에서 베풀어졌습니다.

몇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한스는 시내에 나가 돈을 벌어 오기로 했습니다. 그가 집을 나서며 당부했습니다.

“여보, 숲 근처 밭에 호밀이 다 익었으니, 당신이 거두어들이도록 하세요. 그래야 맛있는 빵을 만들어 먹을 수 있지 않겠어요.”

“아무 걱정 마세요, 여보.”

엘지가 시원하게 대답했습니다.

엘지는 보리와 콩으로 밥을 짓고 그 위에 양파와 돼지기름을 얹어 도시락을 쌌습니다. 서두르느라고 야단을 떨었지만, 호밀 밭에 도착했을 때는 어느덧 태양이 하늘 한가운데 걸려 있었습니다.

“호밀을 베야 하나, 점심을 먹어야 하나? 음식이 아직 따뜻한데, 에라 먼저 먹자!”

뚜껑을 열고 음식을 한 입 베어 물었습니다. 얼마나 맛이 있는지요? 또 한 입, 또 한 입 허겁지겁 퍼먹었습니다. 그릇이 텅 비는 만큼 배가 땡땡하게 불러 왔습니다. 갑자기 졸음이 밀려왔습니다.

“한잠 자고 나중에 베어야지.”

엘지는 어느새 호밀 밭 옆 풀밭에 누워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요.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요? 태양이 서산 너머로 뉘엿뉘엿 기울며 사방이 어둑어둑해졌습니다.

한스가 집에 돌아왔지만, 당연히 엘지는 집에 없었습니다. 그는 아직도 호밀 밭에서 땀을 흘리고 있을 엘지를 상상하며 대견스러운 듯 입을 함박같이 벌리며 웃었습니다. 한편으로 집에 돌아와 점심을 먹을 새도 없었나 보다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한스가 호밀 밭으로 빠르게 내달렸습니다.

이럴 수가! 멀쩡한 호밀 밭은 바람에 출렁이고 낫은 땅바닥에 뒹구는데, 엘지는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며 자고 있었습니다. 한스는 한동안 꼼짝도 않고 그 모습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습니다. 기가 막힌 생각이 퍼뜩 떠올랐습니다. 집에서 방울 달린 그물을 가져와 덫을 놓듯 조심스레 엘지 몸 위에 펼쳐 두고 작대기로 살짝 받쳐 두었습니다. 이윽고 한스는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잠갔습니다.

엘지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어둠이 짙게 깔린 뒤였습니다. 호밀 밭 쪽으로 몸을 돌리는데 방울이 울리면서 그물이 떨어져 그녀를 덮쳤습니다.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지금 벌어지는 일이 꿈인지 생시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내가 아직 꿈을 꾸나? 내가 대체 누구지? 내 몸에 방울이 달렸던 적이 있던가? 나 엘지 맞아?’

자신이 누군지도 종잡을 수 없었습니다. 집으로 가면 모든 것이 확실해지리라는 희망을 품고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캄캄한 밤길을 헤치고 농장으로 향했습니다. 걸음을 뗄 때마다 방울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온갖 어려운 고비를 다 겪은 뒤 마침내 창가에 다다른 엘지가 유리창을 두드리며 외쳤습니다.

“한스 씨, 혹시 엘지가 집에 있나요?”

집 안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물론 내 아내는 집에 있소만, 웬일이오?”

화들짝 놀란 가슴이 쿵쿵 뛰었습니다. 엘지는 무서워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이럴 수가! 내가 안에 있다니. 그럼 나는 내가 아니란 말이잖아. 그럼 나는 누구지? 옳지, 다른 집에 가서 알아봐야겠다.”

그러나 어느 누가 그물을 뒤집어쓰고 요란하게 방울을 울리는 여인을 집에 들이겠습니까? 아무도 문을 열어 주지 않았고, 엘지가 엘지임을 확인해 주지 않았지요.

결국 엘지는 자기 자신을 찾아 마을을 떠났다고 하는데, 이걸 보면 아무래도 똑똑이가 아니라 헛똑똑이였나 봅니다. 그래도 그녀는 여전히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했는지라, ‘똑똑한 내가 없으면, 한스가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까?’ 하고 늘 걱정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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