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수명에 대하여



할아버지 할머니

세상은 평화로웠습니다. 낮이 가면 밤이 오고, 사람들과 길짐승은 땅 위에서 번성하고, 새들은 하늘에서 자유롭고, 물고기는 바다에서 꿈틀거렸으며, 수많은 곤충들도 제 모습을 뽐냈습니다.

하지만 제가 얼마나 오래 살지 알고 있는 생물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직 하느님의 처분만 기다릴 뿐이었지요. 그렇다고 하느님이 생물들 하나하나의 수명을 마음 내키는 대로 정해 버렸던 것은 아닙니다. 사실 하느님은 창조물들이 지껄여 대는 넋두리를 들어 주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답니다.

맨 처음 하느님을 찾아온 것은 당나귀였지요. 당나귀가 제 수명을 물어 오자, 하느님이 대답했습니다.

“30년 어때, 좋지?”

당나귀가 기다란 귀를 쫑긋 세우며 소리쳤습니다.

“안 돼요! 그렇게 오랜 세월 무거운 짐이나 실어 나르다가 죽는 순간까지 주인에게 매를 맞으라고요? 제발 수명을 좀 줄여 주세요!”

하느님은 그 말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알았다, 얘야! 18년을 빼 주지. 어떠니?”

당나귀가 고개를 크게 주억거리며 소리쳤습니다.

“와, 신난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다음으로 하느님을 찾은 것은 개였습니다. 하느님은 개에게도 30년의 수명을 주고 싶어 했지요. 개야 당나귀처럼 무거운 짐을 실어 나를 리도 없고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니, 좋아할 줄 알았지요. 그러나 웬걸요! 개가 뭉툭한 주둥이를 가로저었습니다.

“30년이나 살아 뭐 하라고요? 이빨은 다 빠지지, 귀는 어둡지, 앞도 잘 안 보이면, 컹컹 짖지도 못하고 잽싸게 달리지도 못할 것 아니에요! 마당 한구석에 처박혀 낑낑거리는 꼴이라니. 아, 상상만 해도 끔찍해요!”

그럴듯한 말이었습니다. 하느님은 개의 부탁을 받아 주어, 30년에서 12년을 깎아 주었습니다. 개가 만족한 표정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한동안 하늘의 문을 두드리는 생물이 없었지요. 좀 쉬어 볼까 하는데 원숭이가 시근벌떡 문을 열어젖혔습니다.

“수명을 정해 주신다는 소문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왔어요. 어서 말씀해 주세요, 하느님! 오늘 어떤 장난을 치고 놀까 잔뜩 궁리해 두었단 말이에요. 어서요, 시간이 없어요!”

안 봐도 뻔하지만 원숭이는 천방지축 버릇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하느님은 온화한 얼굴로 입을 열었지요.

“알았다, 알았어. 내 진작 생각해 두었지. 어때, 30년 동안 마음껏 장난치면서 신나게 살아 보지 않겠니? 그럼 다른 생물도 웃고 즐길 게 있어 좋지 않겠니? 물론 네가 반대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렇게는 안 되겠네요, 하느님!”

원숭이가 울상이 되어 몸을 비틀자, 하느님이 피식 새어 나오던 웃음을 거두고 정색을 지었습니다. 원숭이가 꺽꺽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표범 몰래 코코넛 집어 던지는 일이 얼마나 힘든 줄 아세요? 제가 언제나 못된 장난이나 치고, 웃기는 표정을 짓고 있어 항상 즐거울 줄 아시지요? 천만에 말씀이에요! 겉보기는 희희낙락 천하태평인 것 같아도 속은 시커멓게 타 들어간답니다. 그런데 30년이나 살라고요?”

하느님은 원숭이가 가여웠습니다. 결국 수명을 짧게 해 주기로 했지요.

“네가 정 원한다면 어쩔 수 없지. 10년을 제해 주겠다. 그 정도면 만족스럽니?”

“아무렴요! 고맙습니다, 하느님! 무엇이든 분부만 내려 주시면 그 뜻에 따르겠습니다.”

원숭이가 환한 얼굴로 소리치자, 하느님도 맑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원숭이가 쪼르르 달려 나가자마자, 이번에는 사람이 문을 두드렸습니다.

하느님이 사람을 맞아들이며 물었습니다.

“자네도 원숭이처럼 30년이라는 수명이 너무 길다고 생각하겠지?”

놀랍게도 사람은 머리를 쩔레쩔레 내둘렀습니다.

“애걔걔, 30년이요! 30년은 제 앞가림할 준비도 못 할 만큼 짧다고요!”

“알았다! 그럼 당나귀에게 갔을 18년을 더 주지.”

하느님이 ‘이제 얘기 끝났지!’ 하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 추어올렸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지요. 사람이 슬슬 눈치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그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지요. 물론 그동안 나무를 한 그루 심거나 집을 장만할 수는 있을 거예요. 하지만 아이들을 어떻게 먹여 살리겠어요?”

“알았다, 알았어! 개에게 주려 했던 12년을 더 주마.”

하느님이 또다시 선선히 수명을 늘여 주었습니다. 그래도 사람은 만족할 줄을 몰랐습니다. 결국 원숭이가 남기고 간 10년마저 제 것으로 만든 다음에야 불평을 멈추었지요.

그렇습니다. 이야기에서 하느님이 약속한 대로 사람들은 70년의 수명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30년 말고 여분의 세월은 원래 임자이던 동물들이 누리기 싫어했던 모습처럼 살아야 하리라는 것을 우리의 조상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처음 30년 동안 사람들은 건강한 신체를 활발하게 움직이며 인생과 일을 즐깁니다. 그러나 달콤한 꿈이 늘 그러하듯 그런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 버립니다.

당나귀가 넘겨 준 18년 동안 사람들은 가족을 먹여 살리는 무거운 삶의 무게를 지고 나가야 합니다. 다음으로 개가 넘겨준 12년 동안 사람들은 이빨 빠진 개처럼 싸울 힘도 소리칠 힘도 없이 무기력하게 지내야 합니다.

나머지 10년, 원숭이로부터 받은 세월에는 어떻습니까? 노인이 되어 정신이 희미해진 사람들은 젊은이에게 조롱당하기 일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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