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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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History01
| 동냥을 하는 벨리사리우스, 자크 루이 다비드, 1781년, 릴 미술관 |
출처: Wikimedia Commons


그림을 보아요. 늙은 거지가 소년을 품에 안고 동냥을 해요. 늙은 거지는 앞을 못 보는 듯해요. 마음씨 고운 여인이 거꾸로 든 군모에 동전을 넣어 주네요. 그런데 여인 뒤로 얼마나 심하게 놀랐는지 두 팔을 들어 올린 병사가 보여요. 병사는 왜 그토록 놀랐을까요? 늙은 거지가 예전에 함께 전쟁터를 누비던 위대한 장군 벨리사리우스임을 알아본 까닭이지요.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프랑크족, 반달족, 서고트족, 동고트족 같은 게르만 민족이 활개를 치게 되었어요. 이 혼란스러운 시기,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을 다스리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로마의 옛 영토를 다시 찾아 찬란했던 영광을 되살리고 싶었어요. 533년 벨리사리우스는 2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전쟁터로 떠났고, 넓은 영토를 되찾았어요. 동쪽으로는 페르시아의 침략을 막아 국경을 든든히 했고요.

그의 놀라운 활약에 힘입어 비잔티움 제국의 영토가 얼마나 늘어났는지 아세요? 무려 두 배 가까이 늘어났어요. 하지만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더니, 제비도 갚을 줄 아는 은혜를 사람은 까먹곤 하나 봐요. 이렇게 충성스럽고 용맹한 장군이 정치꾼들의 음모에 말려들어 반역죄로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갇혔던 거예요. 물론 황제는 가슴 한구석이 꺼림칙했을 테지요. 얼마 안 있어 장군을 감옥에서 풀어 주었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오래 전의 역사는 기록이 드문드문하고 앞 세대에서 뒤 세대로 전하는 과정에서 살이 붙거나 빠지는 까닭에 사실이 간직한 선명한 색채가 조금씩 희미해지게 마련이에요. 그런 까닭에 하나의 이야기가 다양한 형식으로 소개되는 신화나 전설처럼 하나의 사건이 여러 방식으로 설명되기도 해요. 벨리사리우스의 최후에 대해서도 훗날 이런 비극적인 이야기가 생겨났어요. 황제가 못된 짓을 했다는 거예요. 감옥에서 풀어 줄 때 앞을 못 보는 장님으로 만들고는 "벨리사리우스에게 한 푼 줍쇼." 외치면서 동냥을 해서 먹고살라는 형벌을 내렸다는 거예요.

참, 슬픈 이야기군요. 화가는 그림을 통해 세상살이의 ‘새옹지마’, 행운이 찾아올 때도 있지만, 불행이 찾아올 때도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 했을지도 몰라요. 또 어쩌면 백성들의 안녕과 행복은 나 몰라라 한 채 제 뱃속 배불리기에 바쁜 몹쓸 지도자와 정치꾼들을 비난하고 싶었을지도 모르지요.

그건 그렇고 그림 속에 담긴 역사 이야기를 알고 그림을 보니 그림 보는 재미가 한결 커지는 것 같지 않나요?

이처럼 화가들은 역사 이야기를 즐겨 다루었어요. 어떤 화가들은 과거의 역사를 현재의 잣대로 삼으려 했어요. 또 어떤 화가들은 같은 시대의 역사를 미래의 길잡이로 남기고자 했지요. 그래서 위대한 그림들 속에는 옛사람들의 생생한 모습이 한 장의 사진처럼 오롯이 담겨지곤 했답니다.

역사는 잣대와 길잡이로서 현재를 바로 보는 거울이 되어 주어요. 그곳에는 성공도 있고 실패도 있지요. 널리 알리고 싶은 자랑거리도 있고, 꼭꼭 감추고 싶은 창피스러움도 있고요. 그런 만큼 사람들은 역사를 통해 긍지를 느끼고, 교훈을 되새기지요.

하지만 골치 아픈 일일랑 생각하지 않기로 해요. 역사를 뜻하는 영어 단어 ‘히스토리(history)’는 원래 ‘이야기’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하지요. ‘명화 속 역사’에서 역사는 재미있는 옛이야기이고, 명화는 옛이야기를 더 즐겁게 해 줄 삽화일 뿐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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