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7세 대관식의 잔 다르크
순간적인 변덕과 어지러움을 미워한 도미니크 앵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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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를 7세 대관식의 잔 다르크,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1854년, 240cm×178cm, 루브르 박물관 |


화형대에서 죽음을 맞은 애국 소녀

나라를 구한 어린 소녀, 프랑스의 유관순 열사로 널리 알려진 분이 있어요. 그래요, 잔 다르크예요. 1337년 영국의 국왕 에드워드 3세는 큰 군사를 이끌고 프랑스로 쳐들어왔어요. 당시 프랑스의 국왕은 필리프 6세였고요. 전쟁은 1453년까지 100년이 넘도록 계속되었고, 역사에서는 이를 백 년 전쟁이라고 부른답니다.

전쟁의 원인은 프랑스의 왕위를 누가 차지하느냐 하는 문제였어요. 1328년 프랑스의 샤를 4세가 죽었는데 남자 자손이 없었어요. 프랑스 귀족들은 회의를 열어 샤를의 사촌 형 필리프를 국왕으로 뽑았어요. 필리프 6세였지요. 그러자 영국의 국왕 에드워드 3세는 자신의 어머니가 샤를 4세의 누이라는 이유로 왕위 계승권을 주장했던 거예요.

마침내 프랑스는 샤를 7세 때에 전쟁에서 승리했는데, 계기가 된 것은 1429년에 벌어진 오를레앙 싸움이에요. 이 전투에서 잔 다르크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며 싸움터로 달려가 프랑스를 구했지요. 싸움에서 패배한 영국군은 잔 다르크가 몹시 미웠어요. 결국 1430년 영국군에게 잡힌 잔 다르크는 종교 재판을 받았고, 마녀라는 누명을 쓰고 화형대 위에서 한 줌의 재로 사라졌답니다.


다비드가 물러나자 그의 제자 앵그르가 바통을 이어받아 신고전주의 운동을 완성했어요. 앵그르는 고전주의의 특징이라 할 절대적인 정확성을 고집했어요. 그러니 신중하지 않은 즉흥성과 어지러움을 인정할 리 없었지요. 신고전주의 미술 작품을 몇 점 더 구경할까요. 순서대로 안젤리카 카우프만의 ⟨파리스의 구혼을 받아들이도록 헬레네를 설득하는 비너스⟩, 앙투안 장 그로의 ⟨아르콜 다리 위의 보나파르트⟩, 프랑수아 에두아르 피코의 ⟨에로스와 프시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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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에는 잔 다르크를 통하여 기독교의 영광을 재현해 보려는 화가의 의도가 숨어 있어요.

전쟁에서 승리한 프랑스는 1456년 재판을 열어 잔 다르크의 명예를 되살려 주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