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경
현실을 마주하려 노력한 빛과 그림자의 화가 렘브란트 판 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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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경, 렘브란트 판 레인, 1642년, 363cm×437cm,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
출처: Wikimedia Commons


우리는 예술을 원하지 않아요!

렘브란트는 초상화의 대가라고 널리 알려져 있었기에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그림을 주문했어요. 프란스 바닝 코크가 대장인 자경단도 단체 초상화를 주문했어요. 당시 네덜란드에는 자경단이 많았는데, 이들은 도시를 지키고 독립을 이룩했다는 긍지로 가득 차 있었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그림으로 남겨 영원토록 보존하려 했지요. 그들은 렘브란트에게 1,600길더를 주겠다고 제안했어요. 그림에 등장할 군인이 16명이니까, 한 사람 앞에 100길더씩 모으기로 했던 모양이에요. 결혼식장에 가서 기념 촬영을 해 본 적이 있을 거예요. 자경단이 기대했던 것도 이런 기념사진 같은 작품이었어요. 돈을 똑같이 냈으니, 기념사진처럼 하나같이 잘생기고 미끈한 몸매를 지닌 인물로 표현되길 바랐겠지요.

렘브란트는 기념사진 같은 초상화에 만족할 수 없었어요. 결국 빛과 어둠이 마구 뒤섞이는 그림 속에서 인물과 배경에 생명력이 넘쳐나게 되었지요. 그러나 자경단 사람들은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기념사진처럼 사람들 하나하나의 얼굴이 자세하게 그려지기는커녕 다른 사람의 팔과 어깨에 가려지거나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으니까요. 게다가 아무 관계도 없는 소녀는 왜 나와요! 자연스레 그림은 아주 평판이 좋지 않았고, 렘브란트의 인기는 차갑게 시들해졌어요. 이처럼 예술가는 오해받기 일쑤랍니다.


현실 속에서 살아 숨쉬는 생명의 움직임을 찾아내고자 노력한 바로크 미술의 두 대가로 루벤스와 렘브란트를 말할 수 있을 거예요.

루벤스는 행복과 평화에 가득한 삶을 보냈지만, 렘브란트는 그렇지 못했어요. 그것은 렘브란트가 사물의 화려한 겉모습을 그리기보다는 내면에 감추어진 깊숙한 모습을 파헤치려 애썼기 때문이에요. 말하자면 예술의 세계를 더욱 깊게 하는 대신 대중의 관심을 잃었던 셈이지요. 렘브란트가 활약하던 시절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잘 나가던 바르톨로메우스 반 데르 헬스트가 그린 자경단 그림과 비교해 보면서 사람들이 정말 렘브란트에게 등을 돌릴 만했는지 생각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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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은 빛과 그림자의 강한 대조로 유명해요. 그런 만큼 렘브란트를 ‘빛과 그림자’의 화가라고도 부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