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팔이 소녀



성냥

섣달 그믐날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워 온 도시가 동태처럼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동장군이 심술을 부리는지 칼바람이 거리를 할퀴듯 휘몰아치고, 기왓장이 얼어 터지는 소리가 아주 요란했습니다. 그뿐인가요? 얼어 죽고 데어 죽는다더니 눈은 또 왜 그렇게 펑펑 쏟아지던지요.

사람들은 꼼짝없이 문을 걸어 잠그고 집 안에 틀어박혀 난롯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습니다. 급한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온 사람들만 자라처럼 목을 움츠리고 종종걸음을 쳤습니다. 털외투와 털모자와 목도리로 온몸을 둘둘 말다시피 하고서 말입니다.

가난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밤낮없이 거리를 헤매며 행인들에게 성냥을 파는 성냥팔이였습니다. 도시의 성벽도 오들오들 떠는 듯한 매서운 추위 속을 방황하지 않아야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지만 소녀는 성냥을 팔아야 배고픔을 달랠 빵 한 조각과 추위를 쫓을 땔감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가난한 소녀는 추위에 꿋꿋하게 맞서 싸우며 잘 견뎌 냈습니다.

어느덧 섣달 그믐날 밤이 다가왔습니다. 겨울이 시작되고 가장 추운 날이었습니다. 바깥에 잠깐만 서 있어도 귀가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습니다. 소녀가 거리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요란한 방울 소리를 울리며 눈썰매가 덤벼들었습니다. 말들이 콧구멍으로 더운 김을 칙칙 뿜어내며 와락 달려들었습니다. 소녀는 머릿속이 하얘져 정신없이 뛰었습니다. 그 바람에 신발이 벗겨져 달아났습니다. 사실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유일하게 물려준 신발은 조그만 소녀에게 너무나 컸습니다. 한 짝은 눈보라가 휩쓸고 가 버렸는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열 발자국쯤 떨어진 곳에 튕겨져 나간 나머지 한 짝이 보였습니다. 그때 개구쟁이 소년이 나타났습니다. 소년은 매가 토끼를 낚아채듯 신발 한 짝을 집어 들고 잽싸게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누워 자기를 기다리는 인형의 요람으로 쓰기에 안성맞춤이라고 중얼거리면서 말입니다.

깜깜한 밤이었습니다. 소녀는 파랗게 얼어붙은 발을 힘겹게 떼며 거리를 걸었습니다. 한 손으로 성냥 한 다발을 높이 들고, 다른 손으로는 남은 성냥을 싸서 곱게 간수한 닳아 해진 앞치마를 받쳐 들었지요. 소녀가 가냘픈 목소리로 행인들에게 외쳤습니다.

“성냥 사세요, 성냥!”

​아무도 성냥을 사지 않았습니다. 아니 눈 한 번 마주치려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몸을 이끌고 소녀는 자꾸만 걸었습니다. 추위와 배고픔이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것 같았지요. 차가운 눈송이가 머리와 어깨에 쉬지 않고 내려앉았습니다.

창문마다 환한 불빛이 쏟아져 내리고, 집집마다 거위 굽는 냄새가 풍겨 나왔습니다. 가족들끼리 모여 웃고 떠드는 소리는 소녀를 더욱 쓸쓸하게 만들었지요. 마지막 행인의 흔적도 끊긴 지 오래였습니다. 넓은 도시에 오직 소녀 하나만 밤거리를 헤매고 있었던 것입니다. 소녀는 너무 추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얼어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두 집 사이로 난 비좁은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습니다. 양쪽 벽 덕분에 바람과 눈보라를 잠시 피할 수 있었습니다.

소녀는 무릎을 가슴에 붙이고 두 팔로 꼭 끌어안았습니다. 위험에 처한 고슴도치처럼 몸을 곱송그렸습니다. 하지만 밤이 깊어 갈수록 점점 더 추워졌습니다. 다행히 눈보라는 그치고 별들이 고개를 내밀었지만 말입니다.

‘성냥을 하나 켜면 손이 따뜻할 거야! 아니야, 성냥을 팔아서 돈을 벌어야 해!’

​소녀의 안에서 두 마음이 싸웠습니다. 하지만 달리 무슨 수가 있었겠습니까? 소녀는 벽에 성냥을 그어 불을 붙였습니다. 치지직 소리를 내며 불꽃이 확 일었습니다. 소녀가 불꽃에 손을 녹이려 애를 썼습니다. 환한 빛을 뿌리는 불꽃이 정말 찬란했습니다. 소녀는 아름다운 장식을 새겨 넣은 커다란 난로 옆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소녀는 난로에 발을 뻗어 불을 쬐려 했습니다. 그 순간 불꽃이 꺼지고 난로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검게 타 버린 성냥개비만 손에 남아 있었습니다.

소녀가 허겁지겁 성냥을 벽에 그었습니다. 다시 한 번 불꽃이 확 일어나며 벽 한쪽을 환하게 밝혀 주었습니다. 아, 벽이 흐물흐물 흘러내리는 듯하더니 투명해지면서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습니다. 저녁상이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습니다. 한가운데 사과와 자두를 넉넉히 채워 넣은 거위구이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습니다. 소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는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거위가 식탁 위에서 뛰어내려와 마룻바닥을 가로질러 어기적어기적 걸어갔습니다. 가슴에 나이프와 포크를 꽂은 채로 말입니다. 그 순간 성냥불이 꺼지고, 차갑고 축축한 벽만 남아 소녀를 노려보았습니다.

​소녀는 성냥불을 다시 붙였습니다. 아까 들여다보았던 집이 새로이 보였습니다. 소녀는 천장까지 닿을 듯한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앉아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트리는 수많은 촛불로 장식되어 찬란하게 빛을 발했습니다.

그 불빛이 살짝 열린 창문 사이로 날아갔습니다. 하늘 높이 끝없이 올라가 별들에게 닿을 때까지 말입니다. 그중 하나는 별똥별을 데리고 다시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별똥별은 긴 꼬리를 허공에 그으며 쏜살같이 떨어져 버렸습니다.

​소녀는 ‘하느님이 누굴 데려가셨나 보네!’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할머니가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을 볼 때마다 속삭이던 소리였습니다.

아, 그 순간 소녀는 할머니를 보았습니다. 할머니는 곱고 건강한 모습으로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영롱한 불빛이 하도 눈부셔 소녀는 한 손으로 손차양을 했습니다.

“할머니, 저도 데려가 주세요! 성냥이 다 타 버리면 할머니도 사라지겠죠. 난로나 거위나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말이에요.”

소녀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애원했습니다. 남은 성냥을 한꺼번에 쌓아 놓고 불을 붙였습니다. 대낮의 해님보다 찬란한 불꽃이 일어났습니다. 할머니도 그만큼 더 찬란하고 아름다웠습니다. 할머니가 손을 뻗어 소녀를 품에 꼭 끌어안았습니다. 할머니와 소녀는 도시에서 붕 날아올라 빛과 기쁨의 세계로 날아갔습니다. 추위와 굶주림의 고통이 없는 하늘나라로요.

이튿날 아침 이웃 사람들이 벽에 기댄 채 얼어 죽은 소녀를 발견했습니다. 소녀는 단꿈을 꾸고 있는 사람처럼 해맑은 미소를 간직했습니다. 사람들은 주변에 흩어진 타다 남은 성냥개비들을 보고서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