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과 잉크병



펜과 잉크병

어느 시인이 바이올린 연주회에 갔습니다. 시인은 바이올린 연주자의 신들린 듯한 기교에 완전히 넋이 빠졌습니다. 활이 춤추자, 바이올린은 소나무 숲에서 바람이 불어오듯, 은 쟁반에 옥구슬이 구르듯 아름다운 노래를 선사했습니다. 시냇물이 자갈을 어루만지는 푸른 5월의 꽃동산에서 새들의 지저귐에 흠뻑 젖은 기분이었습니다. 음표들이 연주회장을 풍성하게 채우면서, 사람들은 하나둘 감동에 젖어 눈물을 흘렸습니다. 때로는 폭풍처럼 빠르게 휘몰아치고, 때로는 실바람처럼 천천히 휘감아 오는 천상의 선율을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몸을 떠나 천국을 구경하고 온 것만 같은 굉장한 경험이었습니다. 시인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잉크병을 열고 펜에 잉크를 묻혀 시를 썼습니다. 어쩜 시인이 시를 쓴 것이 아니라, 시가 시인의 손을 빌려 말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바이올린은 속삭이고,
바이올린은 눈물을 흐리고.
바이올린 선율은
심금을 울리네.

마음속에 깊이 감춘
모든 슬픔과 기쁨.
바이올린 선율에
자유로이 해방되네.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라 눈꺼풀이 무거웠습니다. 피곤한 몸이 시인의 손을 단단히 묶어 놓았던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펜을 잉크병 옆에 놓아두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자정을 알리는 교회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희한한 일이었습니다. 거짓말처럼 잠이 싹 달아났습니다.

방금 전까지 시를 쓰던 책상에서 정체 모를 말소리들이 들려왔습니다. 하나는 얄팍한 돌이 물을 튕기며 나갈 때 나는 소리, 다른 하나는 사과 씹어 먹을 때 나는 소리라고나 할까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펜과 잉크병이었습니다.

잉크병이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내 영혼 깊은 곳에서 아름다운 시가 샘물처럼 솟아오르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대단한 일이야. 잉크 한 방울이면, 바이올린과 달빛에 출렁이는 호수와 아리따운 아가씨와 용감한 기사를 노래하는 시가 나오잖아. 사실 나는 그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야. 어쨌든 종이 위에 시가 살아 숨 쉬게 하잖아. 정말이지 신기한 일이야!”

펜이 점잖게 웃었습니다.

“아무렴! 네가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야 맞는 얘기지. 내게 잉크만 주면 되니까. 이봐, 종이 위에 시를 쓰는 것은 바로 나야. 시 한 구절부터 시집 한 권까지, 나야말로 시의 창조자이지!”

잉크병이 발끈 화를 내며 펜의 말을 맞받아쳤습니다.

“착각하지 마! 우리 주인님이 너를 사 온 것은 고작 1주일 전이야. 그런데도 벌써 끽끽 소리를 내며 종이를 뜯어 놓잖아. 게다가 그동안 네가 한 일이라곤 아이들 숙제에 점수 매기는 일밖에 없었잖아. 요즘은 그것도 시라고 부르냐!”

펜이 지지 않고 소리를 꽥 질렀습니다.

“이거야 어처구니가 없어서! 지저분한 잉크나 가득 담고 있는 주제에! 그나마 운이 좋은 줄 알아야지. 주인님이 식초를 넣어 두었으면 어땠을까, 아니면 흐흐흐! 어쨌든 내가 시를 쓰기 위해 잉크를 원하지 않는다면, 너는 잉크병이라고 불리지도 못했을 거야. 에이, 지저분한 늙은이 같으니라고!”

잉크병이 고래고래 악을 썼습니다.

“야, 이 더러운 막대기야! 칠판 긁는 소리나 낼 줄 알지, 네가 할 줄 아는 게 뭐 있냐!”

둘 다 지쳐 잠이 들 때까지 말다툼은 계속되었습니다.